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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서울시향 조너선 노트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3번

  • classiccriticism
  • 1일 전
  • 6분 분량

객원 지휘자 앞에 선 서울시향, 지금 어디쯤 왔나

조너선 노트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3번을 둘러싼 네 평론가의 대담

2026년 6월 18일 목요일 19:3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조너선 노트, 피아노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


얍 판 츠베덴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츠베덴은 특유의 통솔력으로 단기간에 단원들의 기량을 극대화하고, 악단의 전반적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의 조련 아래 다져진 서울시향의 현재 역량은 다른 객원 지휘자와 호흡을 맞출 때 과연 어떤 형태로 발현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신철호, 이종선, 이지원, 이강원 등 네 명의 클래식 평론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6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6 서울시향 조너선 노트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3번> 공연을 함께 관람한 후, 현재 서울시향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심도 있는 대담을 나누었다.



죄르지 리게티, '론타노 (Lontano)'

신철호 이날 서울시향 프로그램의 첫 곡은 리게티의 '론타노'였습니다. '먼, 멀리'를 뜻하는 이 제목은 공간적 의미뿐만 아니라 시간적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죠. 리게티는 악보 서문 격인 연주 지침에 '모든 악기는 알아채지 못하게 시작하라(all instruments enter with an imperceptible attack)'고 적어 놓았으며, 특히 관악기에서는 이것이 필수적이라고 기재했습니다. 마디를 구분하는 선조차 오직 악기별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그려놓았을 뿐이라고 했죠.


플루트 한 대의 A플랫(Ab) 음이 pppp로 시작해 길게 이어지고, 여기에 점차 알게 모르게 악기들이 덧입혀집니다. 선율이나 화성 없이 서서히 번지듯 다가오는 소리 뭉치입니다. 머나먼 공간을 가로질러 오는 듯도 하고, 먼 옛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도 하죠. 저는 이 곡에서 중심음이 주변 음과의 미묘한 관계성과 변형을 통해 하나의 음 덩어리로 인식되는 현상을 두고, 청중이 특정 '음향 중력장(sonic gravitational field)' 내에 놓인 느낌을 받는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중력장의 이동과 함께 점진적 변화를 보이다 두 번에 걸쳐 ffff의 절정에 도달하고, 다시 소멸하는 과정은 장엄한 우주의 질서를 연상케 합니다. 마지막 페이지의 'dim - morendo – niente(점점 여리게 – 사라져가듯 – 무[無]로)' 지시 후, 리게티는 10~20초 동안의 침묵(G.P.)을 들으라고 요구하죠. 작품은 알아챌 수 없는 미세한 에너지로 드러났다가 점점 여려져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고, 그 침묵마저 듣게 함으로써 우주의 질서와 생명의 생성 및 소멸이라는 존재론적 사유를 청중에게 요구하는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향의 연주는 이러한 완벽한 융합의 관점에서 아쉬웠습니다.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부드럽게 시작하라는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했고, 이후 pppp에서 다른 악기가 동일음을 겹칠 때 개별 악기의 존재감이 다소 드러나 버렸습니다. 리게티가 요구한 '하나의 음향 덩어리'로 완전히 융합되지 못한 상황이 두어 번 반복됐죠. 고전적 조성을 벗어난 현대음악이기 때문이라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아쉬움이 작지는 않았습니다.


이종선 신 평론가님이 지적하신 '융합의 실패'와 '개별 악기의 돌출'에 대해 구체적인 앙상블의 문제를 짚고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관악기의 소리와 음색이 통일되지 않고 제각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보에와 피콜로의 음색이 살짝 튀어 오르는 현상이 두드러졌죠.


연주 외적인 부분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참담했던 것은 관객의 감상 매너입니다. 미세한 에너지를 다루며 '무(無)'로 사라져가는 텐션 속에서 "여보세요"라며 전화를 받는 관객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곡의 감상을 철저히 파괴하는 행위였습니다.


이강원 두 분이 지적해주신 미시적인 단점들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흔히 비디오 아트와 결합하여 나타나는 현대음악의 분위기가 파편화된 소리들의 거대한 물결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미시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매끄러움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연주 전반에 걸쳐 밸런스를 맞추는 구간도 있었지만, 트럼펫 등 금관 악기에 가해진 톤의 불균형이 존재했고, 전체를 뒤덮는 현악기 또한 소리가 레가토로 부드럽게 이어지기보다는 단차가 발생했죠.


하지만 저는 이 곡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고 싶습니다. 부분적인 매끄러움은 부족했을지라도, 거시세계에서 본다면 곡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연결되어 일종의 파도와 같은 거대한 질감을 분명하게 나타냈습니다. 곡이 가지고 있는 원근법을 잘 나타냈다는 점에서 서울시향은 곡의 거시적 특징을 적절하게 드러낸 편이라고 봅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협연: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

이지원 제게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의 연주는 첫 만남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유형은 아니었습니다. 정직한 박자감 위에 유연하게 흐르는 지휘에 맞춰, 그는 첫 도입부 음량을 미세하게 설정하며 다이내믹의 서사를 차분히 쌓아갔습니다. 진행감 있는 오케스트라 반주에 끌려가지 않고 여유 있게 처리하는 속도감, 그리고 타건 무게가 과하지 않아 텍스트의 해석이 명쾌하게 전달되었죠.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악보의 성실한 구현과 해석에 있어 과장이 없는 연주자입니다. 다만 그 과장 없음이 협주곡 무대에서는 다소 밋밋함으로 다가올 여지도 있었습니다. 여러 성부를 동시에 처리할 때 성부의 독립성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점, 1악장 카덴차의 기교, 재현부에서의 다양한 음색 설정,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도 손목 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전신을 완화하며 보여준 '절제의 미학'은 분명 그의 미덕이었으나, 당장의 감흥보다는 곱씹을수록 설득되는 종류의 연주였습니다.


문제는 오케스트라였습니다. 첫인상에서는 현악기를 중심으로 프레이징 음량과 악기 운용의 뉘앙스가 긍정적이었으나, 피아노가 등장한 이후 존재감을 처참히 상실했습니다. 1악장 후반, 목관악기의 호흡이 흔들렸고 현악기 역시 미처 보잉의 무게를 빨리 조절하지 못해 피아니시모의 텍스처를 잃었습니다. 호른은 엠보셔(embouchure)에 과한 긴장감이 실리며 따뜻한 호흡이 불편하게 배출되어 답답한 소리를 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둔탁한 연주력이 피아니스트의 정교함을 도드라지게 했죠. 협주곡에서 피에몬테시에 대한 호의가 점차 커진 데에는, 그의 미덕 자체 못지않게 오케스트라와의 대비가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오케스트라는 2악장에서 비올라를 중심으로 저음 현의 강점을 살리긴 했으나 3악장까지 개선의 여지가 부족했습니다. 반면 3악장을 비교적 감성적으로 풀어낸 피에몬테시의 해석은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견주어도 언급할 만했고, 오케스트라 역시 작은 소리의 설정만큼은 확실히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는 점은 짚어두고 싶습니다.

정작 피에몬테시의 진가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앙코르곡(라흐마니노프 전주곡 제5번)이었습니다. 협주곡 내내 절제 뒤에 감춰져 있던 서정성과 기교가 홀로 남은 무대에서 비로소 극에 달했고, 이 짧은 소품 하나가 그의 매력을 협주곡 전체보다 선명하게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협연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이탈하는 관객 무리가 여전히 많은 점은 고질적 문제입니다. 교향악단 공연의 진정한 백미는 인터미션 이후의 교향곡에서 무르익는 만큼 2시간을 오롯이 즐겨보는 시도를 해주시길 당부합니다.


이종선 오케스트라의 둔탁함과 앙상블의 붕괴에 대해서는 이지원 평론가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1악장 시작부부터 현악기 소리가 지나치게 컸습니다. 다만 개별 악기로 보면 첼로는 부드럽고 음색이 좋았고, 콘트라베이스는 배음이 훌륭하게 살아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피아노와 플루트의 타이밍은 어긋났고, 호른의 답답한 소리도 문제였죠. (다행히 2악장에서는 호른 음색이 좋아졌지만요.) 2악장은 클라리넷, 오보에, 호른 등 목관 파트와 현악기, 그리고 피아노가 마치 실내악처럼 대화를 나눠야 하는 구간인데 목관의 음색과 타이밍이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3악장에서는 콘트라베이스 배음이나 플루트-피아노 반주 호흡이 좋았지만, 전체적인 오케스트라의 밀도가 더 있었어야 했습니다.


다만, 저는 피아니스트 피에몬테시의 연주에 대해서는 이지원 평론가님과 정반대의 인상을 받았습니다. 프레이즈가 조금씩 끊어졌고, 유려한 노래라기보다는 무미건조했습니다. 1악장 카덴차는 좀 더 사색적인 독백이길 바랐는데 지나치게 씩씩하게 연주되었고, 무엇보다 페달링이 너무 많아 왼손이 명료하지 않고 뭉개졌습니다. 소리가 웅웅거리다 보니 사색이 결여된 느낌을 받았죠. 2악장 카덴차 역시 오른손 프레이즈가 이어지지 않고 각각의 파편화된 소리로 들렸으며, 세 번째 카덴차에서도 과도한 페달링이 아쉬웠습니다.


이강원 피아니스트에 대한 두 분의 평가가 엇갈리는 지점이 흥미롭네요. 저는 두 분의 시각이 혼재된 형태의 연주였다고 봅니다. 피에몬테시가 프레이즈를 명확하게 나누기보다는 호흡을 끊지 않고 선율을 계속 이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오케스트라 튜티에서 피아노 연주로 이어질 때 음량과 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장점도 있었죠.


하지만 이종선 평론가님의 지적처럼 곡 전체적으로 다소 답답하게 들리는 경향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 이유는 음량과 다이내믹의 대비 폭이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카덴차에서 저음의 울림은 돋보였지만, 곡의 잔향을 충분히 살리지 않는 쪽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기본 유지 음량이 워낙 크다 보니 포르테로 증폭시켜야 할 구간에서도 다이내믹의 진폭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2악장에서도 유려하게 노래하는 흐름을 만들지 못해 선율이 단선적으로 흐른 점, 그로 인해 서정적 표현이 부족했던 점은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 3악장에 걸쳐 고음역이 강조되는 구간에서는 터치에 힘을 빼고 자유롭게 연주하며 재지(jazzy)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등, 특정 구간에서 다채로운 색채감을 조절한 능력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3번 '폴란드'

이강원 조너선 노트가 이끈 차이콥스키는 템포와 긴장감을 억지로 쥐어짜는 대신, 넉넉한 프레이징과 음표 사이의 잔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무곡과 춤곡의 경계를 유려하게 넘나드는 진행은 노트가 과거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 내한 공연을 하면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텍스처를 소환하는 듯했습니다. 긴장감을 팽팽하게 조여 치밀하게 통제하기보다는 거시적 흐름을 유려하게 짚어냈죠.


악장별로 보자면, 1악장은 리듬의 동형 진행 과정에서 선율 처리가 깔끔했고, 우아함을 유지하며 홀의 공명에 선율을 실어 보냈습니다. 차이콥스키 발레 음악을 연상케 할 만큼 원곡의 성격을 구현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2악장도 현악군의 공명이 풍부하게 살아났고 여유 있는 템포 설정이 돋보였습니다. 4악장은 제1, 2바이올린을 양 바깥에, 비올라와 첼로를 안쪽에 배치하여 바이올린에서 저현으로 수렴하는 음향적 직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도입부에서 현악군의 음형 위로 목관악기가 자연스럽게 올라타며 음의 산맥을 선명하게 그려냈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다이내믹의 구현 또한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미시적인 디테일은 내내 불안했습니다. 1악장 금관의 어택이 매끄럽지 못해 톤과 음정이 불안했고, 2악장은 목관 간의 톤 밸런스가 아쉬웠습니다. 3악장에서는 바순, 호른, 오보에 등 관악 솔로가 표현을 너무 절제한 나머지 셈여림 변화가 없어 '이도 저도 아닌' 평면적인 선율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호른이 음량을 팽창시켰다 거두어들이는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4악장은 트롬본의 톤이 너무 튀거나 묻히는 등 조화가 부족했고, 5악장은 도입부 상행 음형에서 과감한 다이내믹 대비를 주지 못해 입체감을 잃었습니다. 피날레 악장다운 음악적 텐션과 밀도를 다잡지 못해 구조적 완결성에 흠이 생겼습니다.


이종선 이강원 평론가님이 짚어주신 악장별 디테일의 아쉬움에 공감합니다. 저는 악기 파트별로 세밀한 논증을 덧붙이겠습니다. 우선 조너선 노트가 암보로 지휘하며 악기별 디렉션을 명확히 준 점은 칭찬할 만합니다.


하지만 1악장 서주는 장중함 대신 속도가 너무 느렸고, 호른이 멜로디의 리듬을 명료하게 살리지 못해 둔탁하게 들리며 낭만성이 결여된 채 출발했습니다. 플루트 음색도 다소 튀었고요. 다행히 갈수록 살아나 다이내믹은 좋아졌습니다. 2악장은 시작할 때 현의 피치는 좋았지만 목관의 통일감이 부족했고, 플루트 셋잇단음표의 명료성이 떨어졌습니다. (바순의 엔딩은 좋았습니다.) 3악장에서는 목관 파트 특유의 쓸쓸한 색채 표현이 부재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호른은 3악장에서 조금 일찍 들어오는 듯한 진입 타이밍상의 미세한 불안을 노출했습니다. 이는 앞서 두 분이 호른의 전반적 역량을 높이 평가하신 것과는 별개로, 어디까지나 앙상블 진입 시점에 국한된 지적임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현 파트의 다이내믹은 훌륭했지만요. 4악장에서는 트롬본이 좀 더 레가토로 이어지게 소리를 냈어야 하는데 툭툭 끊어졌고, 대망의 5악장에서는 호른이 음색을 찾으며 잘 어우러진 반면, 트럼펫과 트롬본이 조심스럽게 녹아들어야 할 구간에서 군대 행진곡처럼 지나치게 씩씩하게 돌출되어 버렸습니다.


이지원 전체적인 총평과 의미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악장 도입부에서 서울시향과 조너선 노트는 리듬 강세의 다변화를 통해 차이콥스키 특유의 익살적 뉘앙스를 효과적으로 살렸습니다. 1, 2악장에서 현악 파트가 지휘자와 적극 화답하고 좋은 뉘앙스를 잡아간 점은 분명한 성과였습니다.


특히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앞선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에서 참사를 안겼던 호른 수석입니다. 3악장에 이르러 절제된 음량의 패시지로 음고 차등 없이 긴장을 유지하는 주력과 호흡을 보여주며 수준급 연주력을 완벽히 증명(회복)해 냈습니다. 이는 큰 위안이었습니다. 잉글리시 호른의 안정적인 음색 매력도 돋보였고요. 4악장은 플루트가 빠른 패시지에서 운지와 텅잉을 일치시키며 모든 화살을 맞아야 하는 혹독한 구조인데, 이 텍스트를 연주해 내는 연주자를 묵묵히 응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악장에서는 한국 오케스트라의 강점인 빠른 패시지와 큰 소리, 제2바이올린의 뉘앙스까지 살려내며 선택적 집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뼈아픈 단점도 명확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합치를 이뤄 포르티시모를 연주할 때면 어김없이 음정의 궤도가 뒤틀리며 지저분해졌습니다. 이쯤 되니 조너선 노트가 서울시향의 색채를 어떻게 해석하고 설정했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객원 지휘자와의 호흡과 기술적 안정을 이뤄 평균 이상의 궤도에 안착한 것은 맞지만,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면모 발굴이나 역량 강화를 기대하긴 어려웠습니다. 세계 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서울시향인 만큼, 호흡을 맞춰 무사히 완주하는 것을 넘어 '오케스트라의 좋은 소리'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과 미학적 의미를 관객에게 감상만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 신철호, 이종선, 이지원 이강원 (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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