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 <루살카>
-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4월 14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30일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던 콘서트 오페라 <루살카>
-2025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 <루살카>
<루살카>는 인어공주를 떠올리게 하는 드보르자크의 오페라로 국내에서는 2016년에 국립오페라단을 통해 초연될 정도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런 <루살카>가 지난 3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로 무대에 올랐다.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는 일반적인 오페라 갈라 콘서트뿐만 아니라 오페라 작품도 오페라극장이 아닌 콘서트홀에서 진행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공연 역시 오페라극장이 아닌 콘서트홀에서 진행되었으며, 오케스트라는 피트가 아닌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형식을 취해 콘서트 오페라의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형식 속에서 데이비드 이의 지휘 아래 서울시향이 반주를 맡았다.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작품의 구조적 완결성과 작품 풍경 및 오페라 가수들의 감정선 등이 유기적인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특정 장면을 묘사하는 구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효과적으로 구현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는 서곡에서부터 드러났다. 꼭 특정 장면을 묘사하는 구간을 꼽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현악기는 음형의 상행과 하행이 명확하게 표현되지 못했고, 호른은 음정이 크게 불안정했다. 서곡에서 드러난 불안정한 연주와 다이내믹 변화에 따른 연주는 이후 여러 장면에서도 지속되었으며,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밸런스 문제도 함께 발생했다.

1막에서는 왕자와 루살카가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 있다. 숲에서 사냥을 하던 왕자가 루살카를 보고 점점 강하게 이끌리는 장면에서 왕자는 아리아 ‘Vidino divná, přesladká!’를 노래한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매혹적인 존재를 놓칠 수 없다고 다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아리아에는 목소리를 잃은 루살카의 침묵이 잠깐 이어지고는 테너의 아리아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왕자가 루살카의 침묵에 대한 답을 찾고, 그녀의 사랑을 확신하고 싶어 절정의 순간으로 향하는 구간을 노래하는 과정에서 테너 손지훈은 충분한 성량으로 노래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때 호른을 비롯한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성악 부분과 비슷한 음역대로 강하게 연주되면서 전체적인 음향 밸런스를 고려하지 않은채 연주를 진행했다. 절정으로 치닫는 프레이즈의 끝자락에서 음량을 조절하는 시도가 있었으나, 효과적으로 다이내믹 컨트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오페라 가수의 감정선을 빌드업하는 구간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가려버리고 절정의 순간만 강조하는 형태로 이어져 아쉬움이 남았다.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작품의 구조적 완결성과 작품 풍경 및 오페라 가수들의 감정선 등이 유기적인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특정 장면을 묘사하는 구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효과적으로 구현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는 서곡에서부터 드러났다. 꼭 특정 장면을 묘사하는 구간을 꼽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현악기는 음형의 상행과 하행이 명확하게 표현되지 못했고, 호른은 음정이 크게 불안정했다. 서곡에서 드러난 불안정한 연주와 다이내믹 변화에 따른 연주는 이후 여러 장면에서도 지속되었으며,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밸런스 문제도 함께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가수가 노래하는 동안 대부분의 구간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다이내믹 변화를 충분히 형성하지 않은채 생동감 없이 이어졌다. 단조로운 연주로 인해 극의 분위기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여 작품 속에 온전히 젖어들기 어려운 순간들도 여러번 발생했다.
아쉬운 점만큼이나 만족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지휘자는 현악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성악과 성악 사이의 감정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곡의 분위기와 풍광을 섬세하게 살려내는 해석을 선보였다. 1막에서 루살카의 아버지 보드닉은 딸이 인간 왕자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루살카의 소원에 보드닉은 깊은 근심에 빠진다. 이 순간 성악의 공백이 생기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채워진다. 이전까지 가수의 노래에 단조로운 반주를 이어가던 서울시향은 이 장면에서 현악기의 음색과 다이내믹을 활용해 감정선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활용했다.2막에서는 마녀와 거래하여 인간이 되었지만 목소리를 잃은 루살카가 등장한다. 말을 하지 않는 그녀에게 점차 흥미를 잃어가는 왕자의 모습과 동시에 왕자를 유혹하는 외국 공주의 장면이 펼쳐진다. 외국 공주는 섬세한 셈여림으로 노래를 이어가는데, 이때 서울시향은 다이내믹 컨트롤을 세심하게 조절하며 가수의 표현과 결을 맞추어 더욱 집중도를 높이는 연주를 선보였다.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와 감정 표현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유기적으로 잘 맞아 떨어지지 않고 단조로운 연주만 이어가던 흐름 선상에 비로소 성악과 앙상블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형태가 공연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연주되고, 극의 흐름에 맞춰 보다 살아있는 연주를 하였다면 실황 공연을 보는 재미가 더욱 살아났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결국 실연당한 루살카는 3막에서 숲속에서 깊은 비탄에 잠긴다. 그녀의 고통을 지켜보던 보드닉은 함께 슬퍼하며,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절망을 토로한다. 보드닉이 퇴장한 뒤에는 오케스트라 투티가 이어지는데, 데이비드 이는 이를 마치 모음곡이나 콘서트 레퍼토리처럼 해석하여 음향을 확장시키고, 더욱 풍성한 울림으로 연주를 이끌어냈다. 보다 교향악적이고 스케일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연주가 이어졌기 때문에 오페라 극장에서 올려지지 않은 오페라라는 측면에서 유일하게 공연의 성격과 해석이 일치하는 부분이었다.연주의 완성도는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앞서 오케스트라의 단조로운 연주를 아쉬운 점으로 꼽기도 하였지만 2막처럼 오페라 가수의 노래가 살아 나도록 결을 맞추는 순간을 마주할 때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데이비드 이가 이끄는 서울시향의 연주는 극이 진행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현악기의 당김음을 활용한 악센트 조절로 작품에 생동감을 더하거나 호른을 비롯한 여러 악기군이 점진적으로 안정감을 찾아가며 보다 견고한 앙상블을 형성하면서 오페라의 숨결을 효과적으로 유지해낸 프레이즈들이 존재했다. 작품 속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는 언제나 살아 숨 쉰다. 꺼져가는 불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것도, 생기가 넘치는 음악을 더욱 활력 있게 만드는 것도, 혹은 반대로 건조하고 척박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지휘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한편, 성악가의 관점에서는 이 작품이 어떻게 다가왔을까?루살카 역의 서선영과 보드닉 역의 박종민 모두 성량 면에서는 훌륭했으며, 극의 몰입도를 효과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서선영의 경우 대표 아리아인 달에게 바치는 노래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이 아리아는 루살카가 인간 세계를 동경하며 왕자를 향한 간절한 사랑을 달에게 호소하는 내용이라 부드럽고 서정적인 음악적 표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다이내믹의 변화가 부족했고 긴장된 채로 다소 경직된 인상을 주었다. 유연한 프레이징을 통한 자연스러운 음악적 표현보다는 테크닉에 초점을 맞춘 듯해, 곡이 지닌 본연의 서정성과 자연스러운 감정의 전달이 충분히 살려지지 않아 아쉬웠다.박종민은 풍부한 공명을 활용하여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극의 중심을 탄탄하게 잡아줬다. 다만 공명감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일부 구간에서 가사가 또렷하게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으며, 보다 명확한 딕션을 통해 극적인 전달력을 높였다면 더욱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손지훈은 연기를 통한 극적 해석과 가성과 진성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표현력에서는 강점을 보이며 안정적으로 극을 풀어냈다. 그러나 성량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밀도가 부족하여 강한 오케스트라 반주가 이뤄지는 경우에는 음향적으로는 존재감이 다소 떨어졌다. 특히 작은 소리를 낼 때, 무대 뒷벽을 타고 반사된 소리가 객석으로 들려오는 현상이 몇 차례 발생해 마이크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설령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소리를 객석으로 보다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재단에서 선정한 VIP나 예술가가 아닌 일반 관객의 경우,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 티켓은 재단 홈페이지에서 공지된 시간에 맞춰 티켓 신청 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신청할 수 있다. 이후 신청한 티켓을 수령하려면 공연 당일 선착순으로 배부받아야 한다. 티켓은 앞좌석부터 순차적으로 배부되지만 1층 좌석은 극히 제한적이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기준으로도 A블록이나 E블록의 끝좌석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일반 관객용 티켓은 3층 좌석으로 지정되어 있어 관람 환경이 여러모로 제한적이고, 좌석에 따른 시야 차이가 크게 발생했다.1층 E블록 우측 좌석에서는 무대 우측 배경과 일부 연출 요소가 가려졌으며, 이는 관객이 무대 전체를 감상하는 데 시야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특히 무대 우측에 설치된 담쟁이넝쿨 장치가 무대 뒤쪽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려 여러 연출 요소를 온전히 감상하기 어려웠다. 합창석을 활용한 합창단의 연출, 우측 박스석에서 펼쳐진 예지바바와 보드닉의 노래와 연기, 오케스트라 뒤쪽 무대로 이동하는 주역들의 동선, 그리고 조명 연출까지 상당 부분을 직접 확인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특히 조명 연출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물가를 표현하기 위해 초록색 조명이 일렁이듯 연출되었을 것이고, ‘달에게 바치는 노래’에서도 달빛을 표현하는 조명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조명 연출은 극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핵심 요소이나, 특정 좌석에서는 이 연출에 따른 분위기와 무대와의 조화를 체감하지 못한 채 상상에 의존해야 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3층에서 관람한 관객들 역시 좌석에 따라 무대 왼쪽의 그루터기 조형물이 보이지 않는 등 무대 연출의 시야 제한을 겪었다고 전했다. 결국 일반 관객들은 특정 좌석에서는 연출 의도를 디테일하게 파악하는 것이 여러모로 어려웠다.
이날 공연은 극적인 요소와 음악적 해석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형태로 진행됐다. 일반적인 콘서트 오페라가 극적 연출을 최소화하고 음악적 해석에 집중하는 방식이라면, 이번 공연은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무대 디자인과 의상 연출을 적극 활용하여 극적인 요소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려는 시도가 이뤄졌다.무대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콘서트홀에서도 극의 배경과 분위기를 암시하도록 무대 디자인을 꾸몄다. 1막과 3막의 숲속 호숫가 장면에서는 무대 왼쪽 전면에 그루터기 조형물을 설치하고, 무대 오른쪽에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담쟁이넝쿨을 앞뒤로 두 줄 배치하여 공간감을 형성했다. 2막에서는 왕자의 궁전을 상징하는 샹들리에를 배치함으로써, 제한적인 무대 조건 속에서도 각 막에 따른 주요 배경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의상 디자인 역시 작품의 내용과 긴밀히 연결된 모습이었다. 루살카의 의상은 네 가지 버전으로 준비되었는데, 물의 요정일 때는 비늘이 반짝이는 청록색 의상을 착용했고, 인간이 된 후 실연의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는 보라색 드레스로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왕자 역시 장면에 따라 세 가지 의상으로 변화를 줬다. 루살카와의 첫 만남과 결혼식 준비 장면에서는 초록색 계열의 의상을 착용하였으나, 3막에서는 깊은 병에 걸려 그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라색 의상을 통해 표현했다. 보드닉과 마녀 예지바바의 의상 역시 극의 상징적 의미를 강화하는 장치를 수행했다. 보드닉은 1막에서 초록색 의상을 입고 등장해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 세계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며 루살카에게 경고했다. 반면 마녀 예지바바는 보라색 의상을 착용하고 루살카에게 인간 세계로 갈 수 있도록 마법 약을 조제하지만, 인간으로 변신한 뒤 사랑하는 인간에게 배신당하면, 요정과 인간 모두 영원한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며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존재로 표현했다.결과적으로 청록색은 때묻지 않은 자연의 형태를 표방하며 순수하고 정결한 사랑을 표현했다면 보라색은 저주와 비극을 상징하는 컬러 코드를 사용했다. 콘서트 오페라라고 하지만 연극적인 요소를 적절히 분배하여 종합예술인 오페라에 더욱 가깝게 표현한 것이 이번 공연의 특징이었다.의상 디자인에 컬러 코드를 활용한 만큼 좌석 위치에 따라 조명 연출을 관찰할 수 없었다는 점은 특히 아쉬운 대목이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다. 연출에 힘을 준 콘서트 오페라라고 한다면 관객들이 음악을 듣는 것만큼 시각적 요소를 경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좌석에 따라 연출을 조정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연출을 고려하여 특정 좌석에 배정을 제한하는 방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후에도 오페라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면, 이러한 점들을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에 이어 올해는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가 무대에 올랐다. <루살카>의 경우 시간 관계상 일부 장면이 삭제되긴 했지만, 세아그룹 故 이운형 회장이 오페라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오페라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이어지는 공연인 만큼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다만 종합예술이라는 오페라의 특성을 더욱 강조한 콘서트 오페라라고 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그룹 내 VIP나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반 오페라 애호가들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도록 보다 세심한 공연 준비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대 디자인을 조정하여 좌석에 따른 시야 제한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콘서트홀에서 이뤄지는 오페라의 특성에 따라 특정 좌석은 아예 배정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러 관객들을 모시고 싶다면 미리 관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연출과 공간 활용, 그리고 관객 경험을 고려한 좌석 배정 등에서 보완이 이뤄진다면 故 이운형 회장의 취지에 맞는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 이강원(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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