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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조르당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 mnm247
  • 15시간 전
  • 3분 분량



<음악과 단원을 신뢰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안정형 리더,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


2026년 01월 29일 목요일 17:30 롯데콘서트홀

지휘: 필리프 조르당(Philippe Jordan)

연주: 서울시립교향악단(Seoul Philharmonic Orchestra)


지휘자의 제스처는 단순한 신호가 아니라, 연주자와 맺는 관계의 방식이기도 하다. 필리프 조르당은 서울시향과의 첫 무대에서 통제보다 신뢰에 가까운 태도로 음악의 방향을 제시했다. 서울시향의 남성 단원들과 함께 연미복 차림으로 단상에 오른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은 긴 신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명료한 해석으로 한국 관객과 재회했다. 어깨에서 손끝까지 곧게 뻗은 왼팔은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종과 횡으로 공기를 가르며 속도를 조율했고, 그 외의 신체는 극도로 절제된 상태로 유지되었다. 과장도 결핍도 없는 몸짓은 그의 음악적 태도를 상징하듯 안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메타모르포젠>의 ‘긍정 시그널’

23명의 현악 독주자를 위한 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은 23개의 성부가 각기 독립적으로 등장하고 교차하며 사라지는 복잡한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이러한 대위적 밀도를 지닌 곡에서 조르당은 각 단원과 끊임없이 시선을 교환하며 연주자들의 표현을 끌어올렸고, 적극적인 교감 속에서 전체의 흐름을 통제했다. 그의 지휘는 곡의 진행감을 분명하게 전달했으며, 복합적인 선율 구조 속에서도 주제 선율을 선명히 부각시켜 입체적인 음악적 공간을 형성했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서울시향과 조르당의 첫 협연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느끼게 했다. 일부 연주자에게서 부담감이 감지되는 순간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단원들은 충분한 준비 속에서 자신감을 드러냈고, 성실하게 음악을 구축해 나갔다. 세부적 완성도에서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연주의 태도와 집중력은 이를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이 작품이 지닌 비극적 서사와 감정의 깊이는 당일 연주에서 다소 단조롭게 실현되었다. 대위적 요소와 화성적 요소가 치밀하게 결합 되어있는 이 곡은 비탄과 추모의 정서를 섬세하게 드러내야 하지만, 조르당의 노련한 템포 운용 속에서 음악은 구조적으로는 견고했으나 개별 표현의 여백은 제한적으로 느껴졌다. 20여 분에 이르는 흐름 속에서 에너지를 분배하고 곡 말미에 무게 중심을 둠으로써 드라마틱한 진행감을 형성한 그의 해석은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23성부의 대비를 통해 더욱 처절하게 드러나야 할 정서는 충분히 체감되기 어려웠다. 조르당의 사전 인터뷰에 따르면, 본 공연에 구성된 두 작품은 모두 비탄을 품고 있으되 궁극적으로는 삶을 축복하는 음악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특히, 〈메타모르포젠〉의 중간부를 ‘희망과 생명력, 삶에 대한 갈망’으로 해석한 그의 관점을 고려하면, 이번 연주는 작품의 다양한 면모 중 긍정적 요소를 강조한 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유난히 빠른 비브라토를 통한 극적 효과도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격정적인 비브라토가 곡의 기형적 형상을 부각시켰으며, 특히 첼로 수석과 더블베이스 수석은 몰아치는 활의 속도와 비브라토를 일치시키며 선율의 등장마다 몰입을 높였다. 다만, 빠른 템포 속에서 다소 얕게 형성된 비브라토는 음색의 깊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제1바이올린 수석의 독주 구간에서는 롯데콘서트홀의 울림과 결합되며 축음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음색이 형성되었는데, 이 개성은 때로 음악적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메타모르포젠〉의 전 여정을 놓고 볼 때, 조르당과 서울시향은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며 ‘긍정의 신호’라는 해석을 일관되게 관철했다. 연주가 끝난 뒤, 공간 전체가 숨을 죽인 채 지휘자의 손끝만을 바라보던 긴 정적의 순간은 이 해석이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과 서울시향 단원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과 서울시향 단원

영감과 안정의 부르크너 <교향곡 제9번>

장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1악장은 트레몰로 위에 축조된 거대한 음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완전한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티시모로 향하는 여정은 조르당과 서울시향의 첫 협연이라는 점이 무색할 만큼 유기적으로 실현되며 전개되었다. 오페라와 관현악 양 영역에서 폭넓은 경력을 쌓아온 조르당은 대규모 편성 속에서 오히려 진가를 발휘하며 중심을 잃지 않고 단원들의 방향을 이끌었다. 특히, 1악장의 백미는 호른 수석의 연주였다. 레가토 주법과 피아노 악상에서 구현된 호흡의 통제는 음악의 긴장을 집약적으로 나타냈다.

스케르초로 연주된 2악장은 한국 연주 교육의 기술적 성취를 확인하게 했다. 빠른 패시지에서의 강인한 연주력은 활기찬 선율과 감상적 선율의 대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역동적인 음향을 형성했다. 특히, 호른과 클라리넷,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듀엣은 음정 맞추기가 까다로운 구간임에도 안정적으로 처리되었다. 더불어 2악장의 핵심 리듬을 담당한 팀파니는 현악기와의 타점을 정밀하게 일치시키며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음향적 거리로 인한 공명 시간차를 극복한 이 정확성은 연주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아다지오로 연주된 3악장은 부르크너 음악의 신앙적 본질을 가장 농밀하게 드러냈다. 겸손과 열정, 참회와 승화를 암시하는 선율과 화성 진행은 작품의 종교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구조와 작법의 정교함과 창의성은 작곡을 전공한 필자로 하여금 창작의 충동을 불러일으킬 만큼 설득력이 있었으며, 바로크 이후 축적된 음악적 전통과 부르크너의 실험정신은 조르당과 서울시향의 연주를 통해 균형 있게 구현되며 쾌감을 선사했다. 장대한 음향은 개인과 신의 관계를 넘어 집단적 서사까지 확장되어 상상하게 했고, 3악장 말미에서 길게 사라지는 종결음은 4악장의 부재를 의식하지 않게 할 만큼 완결된 감각을 제공했다. 미완성 작품임에도 관객이 충분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긴 여음으로 치닫는 감정과 호흡을 절제하며 지휘와 함께 집중을 흐리지 않았던 서울시향의 노련한 실력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연일 ‘리더십’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낯선 단원들과의 협업 속에서도 소통과 신뢰를 우선한 조르당의 모습은 지휘자의 역할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심리학이 말하는 관계 맺음의 본질이 ‘존재의 확인’이라면, 이날 공연장은 음악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장이었다. 쉽게 연결될 수 있으나 진정한 교감이 희소해진 사회 속에서, 이 공연은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형성한 공동의 시간이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이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교감의 밀도에 있었을 것이다.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과 서울시향 단원
지휘자 필리프 조르당과 서울시향 단원

글 이지원(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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