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제816회 정기연주회
- classiccriticism
- 2025년 12월 14일
- 2분 분량

20세기 초의 실험정신과 다채로움의 향연
KBS교향악단 제816회 정기연주회 비평
2025년 07월 18일 (금) 20:00 롯데콘서트홀
KBS교향악단, 지휘 마르쿠스 슈텐츠, 피아노 드미트리 시쉬킨
7월 18일 열린 KBS교향악단 제816회 정기연주회는 20세기 초반의 음악이 지닌 실험성과 다층적 색채를 조망하는 자리였다. 라벨, 프로코피에프, 쇤베르크로 이어지는 이번 프로그램은 각기 다른 작곡가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전통적 조성음악을 벗어나 새로운 음향 세계를 탐구한 시대적 열망을 관통한다.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Markus Stenz)는 한 작품 한 작품의 고유한 미학을 존중하면서도 전체 프로그램에 일관된 긴장과 완급을 부여해, 연주회가 하나의 서사적 호흡을 지닌 음악적 여정으로 느껴지게 했다.

라벨 – 볼레로: 단조로운 반복의 극적인 전환
라벨의 볼레로는 리듬과 선율의 집요한 반복 위에 음색과 다이내믹의 점층적 변화로 긴장감을 축적하는,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정교한 구조를 가진다. 지휘자는 스내어 드럼을 오케스트라 전면에 배치하여 리듬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도 부각시켰으며, 이를 중심으로 음향의 층위를 차근차근 쌓아올렸다. 특히 목관군에서 금관군으로 이어지는 솔로들은 개별 연주자의 해석과 개성이 두드러지면서도, 마지막 합주에서는 절묘한 통일성을 이루어냈다. 이는 지휘자의 치밀한 조율뿐 아니라, KBS교향악단이 지닌 각 파트의 음악적 자율성과 협업 능력이 잘 드러난 대목이었다. 볼레로는 동일한 선율을 다양한 악기로 반복 연주할 때 음역과 음색의 균형이 조금만 어긋나도 ‘잡음’처럼 들릴 위험이 큰 곡이다. 그러나 슈텐츠는 이러한 위험 요소를 정교한 다이내믹 컨트롤로 극복하며 긴장감 있는 해석을 완성했다. 다만 일부 금관 솔로에서 개성의 강조가 균질성을 해치는 순간이 있었으나, 전체적인 음악적 흐름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었다.

프로코피에프 – 피아노 협주곡 3번: 기교와 서정성의 유연한 공존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피아니스트에게 현란한 테크닉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 표현과 해석의 폭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이번 무대에서 협연한 드미트리 시쉬킨(Dmitry Shishkin)은 탄탄한 기술적 기반 위에 섬세한 프레이징을 얹으며, 프로코피에프 특유의 경쾌함과 유머를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1악장에서의 클라리넷과 피아노의 대화는 악상과 호흡의 유연함이 돋보였고, 오케스트라와의 균형 또한 안정적이었다. 2악장 안단티노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가보트풍 변주의 각 변주마다 음색과 음량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며, 서정과 경쾌함이 교차하는 음악적 풍경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다만 3악장에서는 우울과 희락이 교차하는 주제부의 성격 대비가 다소 평면적으로 전개되어 극적 긴장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또한 저음역대의 음향이 오케스트라의 밀도에 묻혀 피아노가 갖는 중량감이 약화된 점은 아쉬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시쉬킨의 연주는 뛰어난 기교와 탄탄한 구조감을 바탕으로,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이 가진 현대적 리듬감과 서정성을 훌륭히 구현했다. 그는 화려한 테크닉과 더불어 앵콜곡을 2곡이나 선사하며 관객들의 성화에 넉넉한 마음으로 보답하기도 했다.

쇤베르크 –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세부적인 해석에 대한 아쉬움
쇤베르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작품 5번은 동명의 희곡을 기반으로 한 교향시로, 인상주의적 서정성과 표현주의적 긴장감을 동시에 요구한다. 슈텐츠는 각 악장마다 세밀한 디테일을 부각하며 오케스트라의 층위 있는 음향을 이끌었다. 목관군은 섬세하고 투명한 음색으로 펠레아스의 주제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했고, 타악기군은 비극적 전환점에서 긴장과 폭발을 극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다만 작품 후반부의 비극적 전환, 즉 사랑에서 이별로 넘어가는 드라마틱한 구간에서는 음향적 대비가 더 뚜렷하게 제시되었더라면 극적 몰입도가 한층 강화되었을 것이다. 금관과 타악기의 공간감 있는 전개의 좀 더 과감한 표현을 나타내거나, 템포의 흐름 전환 등을 통한다면 쇤베르크가 의도한 심리적 전이와 불안정한 정서가 한층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현악군의 안정적 앙상블과 전반적인 음장(音場) 조율은 작품의 전체 구조를 단단히 지탱하며 균형감을 유지했다.
전통과 혁신의 교차점에서
제816회 정기연주회는 20세기 초반의 실험정신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KBS교향악단의 해석적 스펙트럼을 한층 확장한 무대였다. 볼레로에서는 개성적 솔로와 음색 조율이 돋보였고, 프로코피에프 협주곡에서는 협연자의 빼어난 기교와 앙상블의 안정적 호흡이 빛났다. 쇤베르크 교향시에서는 다소 아쉬운 극적 전환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서정성과 음향적 층위가 설득력 있게 구현되었다.
이번 연주회는 KBS교향악단이 단순한 레퍼토리 재현을 넘어, 20세기 음악의 혁신적 정신을 ‘현재적 감각’으로 되살린 무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슈텐츠와 시쉬킨,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낸 이 날의 연주는, 새로운 해석과 균형 감각이 빛을 발한 하나의 예술적 성취였다.
글 조영환(클래식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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