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레볼루션 2025] 체임버 뮤직 콘서트 I
- classiccriticism
- 21시간 전
- 3분 분량

시대의 두 축을 연결한 연주와 탐구
클래식 레볼루션,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5중주 간의 대화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의 체임버 뮤직 콘서트 I은 “바흐와 쇼스타코비치”라는 두 축을 통해 대위법적 사유와 사회적 성찰을 이어가는 의미 있는 무대를 제시했다.
페스티벌 디렉터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는 바흐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단순한 역사적 병렬이 아닌,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서 연결하고자 했다. 바로크의 정밀한 대위법과 20세기 소비에트 리얼리즘 속에서의 고뇌가 한 무대에 만나는 이 프로그램은, 음악이 단순히 과거의 산물이 아닌 현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E장조 BWV 1016 : 섬세한 대화와 균형의 흔들림
첫 곡인 BWV 1016에서 카바코스는 모던 활을 사용했다. 이는 롯데콘서트홀의 대규모 공간에서 충분한 음량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1악장에서는 하프시코드와의 섬세한 균형 속에 맑고 고운 음색을 들려주었으며, 특히 선율의 미묘한 음색 변화를 통해 바흐 특유의 폴리포니적 직조감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2악장 Allegro에서는 음향의 비중이 다소 바이올린 쪽으로 쏠리며 하프시코드의 존재감이 약화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3악장에 이르러 카바코스의 연주는 다이내믹의 세심한 조정을 통해 음향 균형을 회복했고, 짧은 음형에서 잔향을 살리는 탁월한 솜씨를 선보였다. 4악장은 각 패시지의 강조가 뚜렷했으나, 고음역에서의 음질 확장이 다소 불안정하게 들린 점은 작은 흠결로 남았다.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BWV 1023 : 첼로의 심연과 드라마적 전개
BWV 1023은 첼리스트 티모테오스 페트린이 합류하면서 저음의 기반을 강화했다. 첼로의 깊이 있는 저음은 연주 전체에 안정감을 부여했으나, 때로는 챔발로의 선율을 덮어 버리며 섬세한 음향의 균형을 해쳤다. 그럼에도 카바코스의 리드는 존재감을 잃지 않고 엄정하면서도 진중한 흐름을 유지했다. 특히 하프시코드 서주와 대비되는 드라마틱한 전개는 이 곡이 가진 실험성과 자유로운 형식을 잘 드러냈다.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c단조 BWV 1024 : 진위 논란 속에서 드러난 현대적 감수성
BWV 1024는 진위 논란이 있는 작품이지만, 이날 연주는 오히려 그 모호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지점에서 흥미로웠다. 1악장에서 페트린의 첼로는 비장미 넘치는 음향으로 긴장감을 고조시켰으며, 2악장 이후에는 한층 응집력 있는 템포 조절로 작품의 드라마를 강조했다. 다만 보잉의 불안정성과 거친 질감이 곳곳에 드러났는데, 이는 오히려 감정의 밀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바흐의 절제된 바로크 어법보다는 현대적 감수성에 기댄 표현력이 두드러진 순간이었다.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5중주 g단조 Op.57 : 긴장과 해방을 오가는 앙상블의 집약
후반부의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5중주는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했다. 1악장의 프렐류드와 푸가에서 피아노가 중심을 잡고, 현악이 점차 합류하며 치밀한 대위법적 구조를 형성했다. 연주자들은 보잉의 일치감을 통해 강력한 앙상블의 결속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피아노와 현악의 균형이 돋보였다.
특히 이지혜의 바이올린은 도입부에서 주제를 제시할 때 섬세한 스타카토와 긴장된 레가토의 대비를 뚜렷하게 구현하며 곡의 서사를 열어젖혔다. 절정부로 향하는 과정에서는 현의 압력을 점차 높여 강력한 포르티시모로 치고 올라가되, 마디마다 프레이징의 끝을 정교하게 다듬는 방식으로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이는 곡 전체가 단순한 직선적 고조가 아니라, 세밀한 호흡의 층위를 따라 고조되는 구조임을 명확히 드러낸 해석이었다.
스케르초에서는 활 끝을 짧게 튕기며 날카로운 리듬감을 강조했고, 피날레에서는 피아노와 함께 유머러스하면서도 서늘한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이중적 정서를 살아 있는 질감으로 구현했다. 결과적으로 이 연주는 기계적 정확함에 그치지 않고, 아티큘레이션의 차이를 통해 극적 긴장을 단계적으로 고조시킨 구체적이고 유기적인 해석의 모범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바흐에서 쇼스타코비치로 이어지는 시간의 스펙트럼
이번 연주는 단순히 바로크와 현대를 나란히 두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바흐의 소나타에서 드러난 대위법적 정신은 쇼스타코비치의 푸가와 앙상블 속에서 재탄생했고, 이는 곧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음악적 사유의 연속성을 보여주었다. 다만 카바코스의 연주에서는 곳곳에서 빠른 패시지에서의 불안정감이 눈에 띄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그가 기획자이자 지휘자, 독주자와 실내악 연주자로 동시에 참여하며 지나치게 방대한 레퍼토리를 소화한 데 따른 여러가지 한계로 보였다. 기획자이자 연주자로서의 헌신은 분명 빛났으나, 오히려 과중한 역할 부담이 연주의 세밀함을 일정 부분 희석시킨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이 무대는, 바흐의 바로크적 질서와 쇼스타코비치의 20세기적 긴장을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하며, 음악이 과거와 현재,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지속적인 대화의 장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연주자와 기획자의 역할이 적절히 분배될 때 비로소 완전한 균형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준 무대이기도 했다.
글 조영환(클래식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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