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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챔버 오케스트라 제14회 정기연주회

  • classiccriticism
  • 2일 전
  • 2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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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6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헤이리챔버오케스트라의 제14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이번 공연은 ‘바흐의 메아리’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바흐의 영향력과 그 변주를 조명하는 무대였다. 프로그램은 바흐를 중심에 두고 그 영향을 받은 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배치하였다. 특히 작곡가 조우성에게 신작을 위촉해 이날 초연함으로써 주제의 의미를 더욱 확장했다. 이러한 기획은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모여 이룬 앙상블과, 이를 이끈 서진(헤이리국제음악제 음악감독, 계명대 음대 교수)의 지휘를 통해 더욱 빛을 발했다. 나아가 음악평론가와 지휘자를 비롯한 저명 음악인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이번 무대의 의미와 무게는 한층 더해졌다.


전반부의 첫 곡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3번. 현악기 아홉 대와 쳄발로로 편성된 이 작품은 대위법적 직조의 화려함이 특징이다. 친숙하게 들리는 곡명과는 달리 실제 연주하기는 어려운 작품임에도 이날 연주는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서진은 무대에 올라 절제된 제스처로 연주자들을 이끌며, 지휘자가 없던 당시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실내악적 호흡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연주자들은 역동적인 에너지를 드러내면서도, 맑은 음향을 유지하기 위해 비브라토를 절제하였다. 격렬한 패시지에서는 현악기의 에너지가 충분히 드러났고, 쳄발로의 안정적인 어울림은 음악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듯 몇 가지 아쉬움도 있었다. 곡의 시작에서 어택 타이밍이 정확하지 않아 음향이 선명하지 않았고, 부분적으로 인토네이션의 불안정이 감지되기도 하였다. 저음부와의 타이밍 부조화는 리듬감과 음악의 생동감을 약화시켰다.


이어진 오보에 협주곡에서는 이현옥이 협연자로 나섰다. 지휘자는 여유로운 템포로 출발하며 곡의 서정적 성격을 조화롭게 표현하였고, 오보에는 안정적인 호흡으로 투명한 음색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오보에와 현악 반주가 미세하게 엇갈리면서, 음악적 대화의 긴밀함이 약화되고 앙상블의 응집력이 흐려지는 경향이 있었다.


분위기는 브리튼의 전주곡과 푸가에 이르러 비로소 활기를 되찾았다. 도입부는 다소 불안정하게 출발하였으나, 오히려 이 불안함이 곡의 긴장을 배가시키며 강한 울림을 전했다. 곡 전반부에서의 다이내믹 대비, 음색의 지속적 변화는 청중에게 생동감을 선사했고, 이후에도 전반적 흐름을 지켜내며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를 전달하였다. 특히 바이올린 솔로가 들려준 맑고 빛나는 톤은 앙상블의 묵직한 울림과 대비를 이루며 곡의 극적 효과를 한층 강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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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구석구석까지 ‘바흐의 메아리’를 선사한 서진 지휘자와 헤이리쳄버오케스트라


후반부의 무대는 조우성의 신작 바흐의 메아리로 시작되었다. 작품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서곡 선율을 바탕으로 하였다. 첼로가 서곡 선율을 제시하다가 잦아들면서 아주 여린 드론적 서스테인으로 이어지고 그 위에 바이올린 등 현악기와 싱잉볼이 얹어지면서 현대적 화성과 미분음을 통한 불협이 형성된다. 이는 신비로운 울림을 만들어내며, 원곡의 기억을 기반으로 새로운 청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청중은 바흐의 친숙한 선율을 통해 현대음악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작품은 이날 연주단체의 성격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 모음곡은 지휘자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함께, 휘날레에 걸맞은 장관을 연출했다. 오보에와 파곳, 호른, 트롬본 등 관악 파트는 강인하면서도 유연한 음향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특히 ‘서주’ 부분의 오보에 솔로는 맑고 절제된 톤으로 프레이즈를 매끄럽게 이끌었고, ‘비보’에서는 트롬본이 유머러스한 글리산도로 연주의 활력을 배가시켰다. 지휘자는 관악기의 선명한 음향과 현악기의 단단한 울림을 이끌어내며 프로그램 전체의 대미를 장식했고, 객석은 뜨거운 박수로 호응했다. ‘바흐의 메아리’가 헤이리를 출발해 청중의 가슴속에 깊이 울리는 순간이었다.


ps. 흥미로운 점은, 이날 연주 인원의 변화였다. 첫 곡은 현악 9대와 쳄발로로 시작했으나, 곡이 이어질수록 점차 인원이 늘어나면서 마지막 곡에서는 중형 오케스트라의 규모에 이르렀다. 연주 인원의 확대가 마치 음악적 크레센도처럼 느껴졌고, 그 흐름 속에서 완성도와 감동도 함께 고조되었다. 이는 프로그램 구성과 연주의 결과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부분으로, 우연이라고 하기엔 긴 여운을 남겼다.


앵콜곡으로는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의 4악장이 연주되었다. 연주자들이 하나씩 무대를 떠나자 객석에서는 가벼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장면은 단순한 유머로 볼 것은 아니다. 초연 당시에는 연주자들이 하나둘 퇴장함으로써 궁정 연주자 생활의 어려움을 은연중에 드러낸 일종의 항변이었다. 오늘 무대에서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외롭고 치열한 예술의 삶을 묵묵히 이어가겠다는 젊은 연주자들의 조용하면서도 확고한 선언처럼 보였다.


글 신철호(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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