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교향악축제 창원시립교향악단
-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4월 18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30일

균열을 숨긴 성벽, 부재를 위한 탑
<2025 교향악축제: 창원시립교향악단>
1989년 시작된 대한민국 최대 클래식 페스티벌,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가 <The New Beginning>이라는 부제 아래 2025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전국 18개 교향악단이 저마다의 색채로 오늘과 내일을 그려내는 가운데, 창원시립교향악단 (이하 창원시향)은 피아니스트 문지영과 함께 축제의 첫 장을 열었다. 그 시작점에서 선택된 두 작품은 상실과 저항이라는 전혀 다른 결로 무대 위에 올랐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0번’. 부재를 탑으로 쌓은 이와 균열의 성벽을 감싼 이의 각기 다른 버팀목이 마주 섰다.
질서 위의 자유
라벨이 단악장의 구조 속에 3부 형식을 절묘히 담아낸 이 작품에서, 피아니스트 문지영은 견고함과 유연성 사이를 정교하게 조율했다. 엄지라는 심지로 깊고도 묵직한 울림을 방만함 없이, 오로지 왼손으로 빚어냈다. 동시에 유려함도 놓치지 않은 타건은 고이지 않은 프레이징을 견인했고, 그 흐름은 질서적이면서도 자유로웠다. 변박에 접어들며 리듬의 파열을 맞는 혼란을 그녀는 파괴가 아닌 재구성의 대상으로 삼았다. 박의 난무를 통제하는 대신, 그 안에 숨은 배열을 정확히 짚어냈고, 음과 음 사이의 간격마저 품어 소리의 밀도를 단단히 채웠다. 그 위에 쌓인 자유는 결코 무너질 수 없었다. 라벨이 하나의 손을 위해 헌정한 탑은 문지영의 손끝에서 부서지지 않는 궤적을 그렸다.
서정을 지탱한 축
창원시향은 단순히 반주를 넘은 정서를 주도하며 솔리스트의 질주를 견실히 따라붙었다. 어둠의 서두에서 저음역대의 현악 파트와 베이스클라리넷, 콘트라바순은 농밀하고 눅진한 음향을 만들어냈다. 이 구간의 밀도가 떨어지면 작품의 중심이 무너지기 쉬울 테지만, 이들은 단순한 지탱을 넘어 톤 자체로 서사를 밀어붙였고, 현악 파트의 음색 간 통일성과 긴 호흡의 프레이징 처리는 곡의 서정성을 만들어가기에 충분했다. 이따금 고음부의 날 선 마찰음이 공명과 배음의 확장을 저해하기도 했으나, 이내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청아한 선율로 솔리스트와 대화를 나누며 서정의 결을 쌓았고, 탐탐과 심벌즈, 스네어는 결정적인 전환마다 정확히 낙하하며 고음역대의 타악기가 전달할 수 있는 섬광을 선사했다. 당대에 재즈에 매료되어 있었던 라벨의 흔적이 드러나는 금관 파트에서는, 각 악기군이 안정적인 텅잉과 적절한 텀을 두어 디딤판을 구축했다. 그가 염두에 둔 재즈적 유연함보다는 클래식 어법에 가까운, 단정한 인상을 남긴 것에 그쳤지만, 리듬을 방관하지 않은 트럼펫과 호른의 명료함은 피아노와 교차점을 부유시키며 오른손의 부재에 축을 세웠다.
묵음 끝의 발화
침묵을 강요당한 세월의 응축. 그 끝에서 터진 분노를 품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0번’에서 지휘자 김 건의 해석은 쉽게 넘치지 않았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아 뜨거우나 서늘했고, 격정적이나 절제되어 있었다. 정제된 템포, 과장 없는 몰입 속에서 분출은 단숨에 일어나지 않았다. 불씨는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아 듣는 이는 묘하게 데었고, 열기는 머물러만 있지 않고, 그의 손끝에서 무던히 타올라 끝내는 폭발했다.
뇌리에 박힌 인상은 정밀함과 통제력의 일관성이었다. 클라리넷과 바순의 롱톤 위에 올려진 현의 보잉은 매우 정확했고, 프레이즈의 진입도 안정적이었다. 특히 투티에서의 완벽한 앙상블은, 단원들의 준비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금관 파트 역시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프로젝션으로 중심을 세웠고, 현과 목관의 교차 타격과 팀파니는 실질적인 긴장감을 마련했다. 김 건은 이 긴장감을 밀어붙이는 대신 질감을 팽창시키는 해석을 택해, 압력을 끝까지 유지시켰고 바이올린의 음형 위로 트럼본과 팀파니가 중첩되면서 뿜어진 몰아침은, 내면적 폭발 직전의 정적을 극대화했다. 분명 격렬하나 그 안에는 환희도 해방도 없었다. 쉼 없이 질주하나 가로막혀 있었다. 이 어긋난 감정. ‘쇼스타코비치의 아이러니’는 이들의 연주 안에 투영되어 있었다.
표현의 경계를 맴돌던 이는 자신의 이니셜 D-S-C-H를 코드화해 전면에 배치했으며, 그 음형은 예술이 검열되던 시대에 정체성을 지키려는 자화상이자, 자아복원을 향한 선언이었다. 이 서명의 동기(motif)에 끼어든 호른 수석은 섬세한 호흡 조절로 흔들림 없는 선율을 제시했고, 넓은 인터벌에서도 정확한 센터링을 유지하며 정조를 각인시켰다. 피콜로와 플루트가 만들어낸 건조하고 이질적인 소리는 오히려 작품의 정조와 맞닿아 있었으며, 승화와 조롱이 교차하는 아이러니의 집약 속에서 목관은 마지막을 위한 순간을 조심스레 펼쳤다. 동승을 함께한 현의 조직력은 흠잡을 데 없었지만, 프레이즈 내부에서의 미세한 팽창과 이완, 즉 메사디보체가 결여되어 압력의 흔적이 남았던 것은 못내 아쉬웠다.
마에스트로는 침잠한 시작부터 역동적인 상승까지 하나의 곡선을 그렸다. 상체를 비튼 채 뒤로 젖히며 박을 이끌던 비팅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음악의 강압을 온몸으로 감지하고, 반응하는 움직임이었다. 음악 안에서 움트는 저항의 형상이었고, 마치 침묵에 갇힌 자유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클라이맥스로 치닫으며 그는 박자가 아닌 맥박으로, 정박이 아닌 호흡으로 연주를 주도했고, 음의 표정은 작곡가의 냉소인 듯이 때로는 의지인 듯이 끊임없이 바뀌었다. 이 감정의 심연 위로 현악이 쏟아지며 누적된 저항은 마침내 폭발했다. 억눌린 시간 끝에 터져 나온 묵직한 폭발이었다.
왼손으로 세운 질서는 자유를 품었고, 침묵의 끝에서 소리는 터졌다. 부재와 균열은 끝내 제 무게를 견뎌냈다.
글 이예랑(클래식음악평론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