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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 베르디《레퀴엠》

  • 작성자 사진: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7월 2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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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더십, 함께 이룬 울림

- 아드리앙 페뤼숑과 부천필이 그려낸 베르디《레퀴엠》

2025년 06월 20일 (금) 19:30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 아드리앙 페뤼숑


지난 6월 20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327회 정기연주회에는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하여 베르디의 《레퀴엠》이 무대에 올려졌다.

이번 연주회는 아드리앙 페뤼숑이 부천필 수석지휘자로 부임하고 다섯 번째 무대이다. 지난 4월 ‘2025 교향악축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몇 개월간 지휘자와 악단이 어떤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는지 가늠해 보았다. 특히 베르디의 《레퀴엠》이라는 대작을 통해, 부천필의 새로운 예술적 성취와 지휘자–오케스트라 간의 조화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이날 무대에는 부천시립합창단과 노이오페라코러스, 그리고 소프라노 이명주,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김재형, 베이스 하성헌이 협연자로 함께했다.


연주는 첼로의 피아니시모로 시작된 <1. 레퀴엠(Requiem)>에서부터 인상적이었다. 지휘자는 느린 템포 안에 경건함과 간절함을 조심스럽게 담아내었다. 조성이 전환되며 코러스 베이스가 포르테로 등장하기까지, 오케스트라와 합창은 정적인 흐름 속의 긴장감을 훌륭히 유지해냈다. 이는 이날 연주의 첫 번째 음악적 성과였다. 이어 지휘자의 볼륨을 낮추라는 손짓에 정확히 반응하며 데크레센도를 섬세하게 구현하는 오케스트라의 응답력은 두 번째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뒤이은 ‘키리에(Kyrie)’에서 관악기들은 현과 합창이 이루어놓은 소중한 피아니시모를 흩트리지 않고 성실히 받쳐주며, 음악의 내적 긴장을 지켜냈다. 이는 이날 연주에서 가장 두드러진 음악적 성취로 평가될 만하다.

앞서 내면의 긴장과 조심스러운 정서를 유지했던 연주는, ‘진노의 날’로 잘 알려진 <2. 디에스 이레(Dies irae)>에 이르러 극적 분출로 전환된다. 이 장면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은 부천아트센터의 뛰어난 음향 설계에 힘입어, 압도적인 음량과 극적인 대비를 통해 작곡자가 의도한 종말의 서사를 완성도 높게 구현해냈다. 강한 리듬과 응축된 하모니의 중첩 속에서, 연주자들은 표현과 정확성 모두에서 거의 나무랄 데 없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투바 미룸(Tuba mirum)’은 천상의 심판을 알리는 최후의 나팔소리를 무대 안팎의 트럼펫 으로 나타내는 인상적인 부분인데, 일부 트럼펫 소리의 불안정으로 인해 ‘심판의 장엄함’이 온전하게 전달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레퀴엠》은 웅장한 합창과 함께 네 성부의 솔리스트가 중심축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날 연주에서 합창단은 오케스트라와 완벽한 호흡을 이루며 서두부터 일관된 집중력과 밀도 있는 사운드를 선보였다. 솔리스트들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전체적인 균형감 형성에 기여하였다. 일부 솔리스트는 처음 등장하는 구간에서 음정과 호흡의 안정감 면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이어지는 ‘레코르다레(Recordare)’에서의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 이중창은 두 성악가가 감정의 섬세함을 놓치지 않으며 음악적 서사를 훌륭히 이끌어나간 연주였다. 그러나 진성 전환 시점이나 비브라토의 개성 등 발성 방식의 미묘한 차이로 인해 이중창 특유의 음색적 조화가 흐트러지는 순간도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5. Agnus Dei(아뉴스 데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 두 성부의 완벽한 앙상블을 감상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반면 테너와 베이스는 기술적 완성도와 표현력 모두에서 안정된 연주를 선보였다. 특히 ‘호스티아스(Hostias)’에서 테너의 섬세한 피아니시모 표현은 곡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 중 하나로 손꼽을 만했으며, ‘라크리모사(Lacrimosa)’의 사중창에서 네 성부가 서로를 경청하며 앙상블을 맞추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이날 연주의 감동을 더욱 증폭시키는 장면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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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페르토리오(Offertorio)>를 앞두고 짧은 숨 고르기의 시간을 가진 것을 제외하고 1시간20분 넘는 여정을 쉼 없이 이어온 부천필은 마지막 가사 ‘Libera me(저를 구하소서)’로 연주의 대미를 장식했다. 지휘자는 마지막 마디에서 지휘봉을 합장하듯 쥐고 마치 기도하듯이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다.

그 순간은 단지 호국 영령을 위한 기도에만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작게는 몇 달간 이어진 쉼 없는 준비와 연습에 대한 감사의 마음, 크게는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 속에 드러난 인간의 연약함과 그에 대한 참회의 기도였을 수도 있다.

이날의 연주를 통해 아드리앙 페뤼숑과 부천필은 음악적 감각과 해석의 방향을 섬세하게 공유하며 긴밀히 소통해온 결과, 상호 간 단단한 예술적 신뢰 관계를 구축했으며, 새로운 해석의 경지를 함께 이루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들의 다음 무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신철호(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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