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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교향악축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 classiccriticism
  • 4월 30일
  • 3분 분량

리듬이 조직한 두 개의 사랑 - 번스타인과 프로코피예프

2026년 4월 5일 일요일 17: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아드리앙 페뤼숑, 바이올린 에스더 유


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은 이번 프로그램을 20세기 레퍼토리로 구성했다. 에스더 유의 협연곡으로 선택한 작품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플라톤의 향연에 따른 바이올린 독주, 현악, 하프, 타악기를 위한 세레나데(이하 ’세레나데‘)‘였고, 2부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발췌‘곡으로 채웠다. 두 작품은 모두 “사랑”을 주제로 하지만, 보다 깊이 들어가면 두 작곡가가 이를 조직하는 핵심은 ’리듬‘에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기서 단순한 서정에 머무르지 않고, 리듬을 통해 구조화되고 충돌하며 에너지로 전환된다. 타악기 연주자 출신인 아드리앙 페뤼숑의 음악적 배경을 고려할 때, 이러한 프로그램 선택은 우연이라기보다 의도된 해석의 방향으로 읽힌다.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은 미국 음악이 유럽 중심의 전통에서 벗어나 독자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순수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곡가로, 이러한 특성은 때로는 개성으로 때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세레나데’ 역시 그러한 번스타인의 음악적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사랑에 대한 다양한 사유가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철학적 구조를 지닌다. 이 작품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사랑의 양상을 매개하는 “화자”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 화자의 발화는 선율뿐 아니라 리듬의 조직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1악장은 생각을 꺼내듯 시작되는 독주 바이올린의 제스처가 중요한데, 이는 사유의 깊이를 요구하는 지점이다. 이때의 음악은 즉각적인 감정보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처럼 시간의 축적을 통해 형성된 밀도에 가까운 울림을 지닌다. 긴 시간을 지나온 존재가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처럼 번스타인의 음악도 이 지점에서 사유의 출발을 드러낸다. 그러나 에스더 유는 이를 섬세하고 여린 음색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한 나머지, 템포의 유연성과 음색의 밀도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사유의 층위가 또렷하게 드러나지 못했고, 그 결과 독주와 오케스트라 간의 균형이 다소 불안정하게 형성되었다. 리듬이 구조를 형성하는 이 작품에서 초기의 긴장 형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2악장 ‘아리스토파네스’의 종결부에서는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그리움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정서를 안정적으로 회복했다. 3악장의 짧고 빠른 푸가토적 스케르초와 4악장 ‘아가톤’에서는 독주와 오케스트라 간 타이밍이 다소 어긋나는 순간도 있었으나, 카덴차에서는 정제된 긴장 위에 선율의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구축했다.

5악장은 작품의 정서를 종합하는 동시에, 리듬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느리고 무게감 있는 서두에서 첼로와의 카덴차, 이어 비올라까지 합류하며 긴밀한 호흡을 보여주었고, 이후 재즈적 리듬 감각을 바탕으로 분위기가 빠르게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리듬은 사유를 현실의 에너지로 환원시키는 매개로 기능한다. 에스더 유 역시 이러한 리듬감을 자연스럽게 살리며 연주의 밀도를 높였고, 페뤼숑도 비트에 밀착된 상태로 오케스트라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였다. 결과적으로 사랑이 철학적 사유이면서 동시에 혼돈의 에너지라는 번스타인의 결론을 리듬 구조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시하였다.

앙코르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흔히 독주로 연주하는 것과 달리,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오케스트라와 함께 선보였다. 이는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음향으로 융합되는 순간을 만들어냈으며, 아드리앙 페뤼숑이 포디움 없이 단원들과 같은 높이에서 소통하는 모습은 부천필하모닉의 유연한 앙상블 감각을 더욱 부각시켰다.



이어진 프로코피예프(1891~1953)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발췌‘곡은 지휘자가 직접 선택한 12곡으로 약 한 시간에 걸쳐 연주되었다. 서곡을 시작으로 ’소녀 줄리엣‘, ’캐퓰릿가의 무도회‘, ’티볼트의 죽음’,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별’을 거쳐 ‘줄리엣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하나의 서사를 따라 전개되었다. 이 작품에서 리듬은 캐릭터와 갈등을 규정하는 핵심 장치로 작용한다.

서곡에서는 제1바이올린의 맑은 음색을 시작으로 비올라의 안정된 중음, 더블베이스의 깊이 있는 저음이 구조를 견고히 했고, 관악 역시 목관과 금관이 각자의 음색과 리듬을 명확히 드러냈다. 암보 지휘는 파트 간 리듬과 타이밍을 명확하게 조직하는 데 기여하며 앙상블의 일체감을 강화했다. 여섯 번째 곡 ‘발코니 장면’에서는 현악의 16분음표 패시지가 저음 금관의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쾌하게 흐르며 서정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리듬의 긴장을 잃지 않았다. 여덟 번째 곡 ‘로렌스 신부’에서는 저음 현악과 저음 관악의 결합이 단단한 중심을 형성하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별’에서는 초반 바순 리듬이 다소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으나, 이후 현악의 피치카토에서 아르코 전환과 호른 솔로를 거쳐, 바이올린 선율이 층층이 축적되며 리듬과 음색이 동시에 구조를 회복하였다. 나아가 중저음 현악 위에 바순에서 클라리넷으로 이어지는 음색 변화는 건축적으로 쌓이며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 마지막 ‘줄리엣의 죽음’에서는 피아노와 큰 북의 타이밍이 미세하게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리듬의 긴장이 끝까지 유지되었다. 현악의 활 움직임은 시각적 퍼포먼스와 결합하여 음악적 긴장을 강화했고, 곡이 끝나가는 지점의 점진적인 데크레센도는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음향적 소멸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프로코피예프가 색채와 리듬을 결합해 구조를 형성하는 작곡가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후 약 10초간 이어진 긴 침묵은 공연의 완성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침묵을 관객이 함께 유지한 뒤 지휘봉이 내려오자 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는 암보 지휘를 통해 오케스트라와 완전히 하나로 결합된 아드리앙 페뤼숑의 리듬적 통제와 집중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글 이종선(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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