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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통영국제음악제 -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with 니콜라스 알트슈태트 & 김유빈

  • classiccriticism
  • 4월 30일
  • 5분 분량

서로 다른 시대의 음악 어법을 공존시키는 일

2026년 3월 28일 토요일 19:00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통영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열린 이번 공연은 고전, 낭만 레퍼토리와 현대음악을 한 무대에 병치함으로써, 곡마다 다른 해석 방식과 소리의 결을 선명하게 대비시켰다. 이 공연의 관건은 현대곡을 얼마나 무리 없이 끼워 넣었는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의 어법을 한 무대 안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공존시켰는가에 있었다.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크세나키스의 ‘Aroura’, 베레시의 ‘네 개의 트란실바니아 춤곡’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선율, 질감, 리듬을 풀어냈고, 2부의 C.P.E. 바흐 ‘플루트 협주곡’과 하이든 ‘교향곡 70번’은 협연자와 지휘자의 리드에 따라 곡의 흐름과 표현의 밀도를 다르게 드러냈다. 플루트 협주곡에서는 플루티스트 김유빈이 협연자로 나서 별도의 지휘자 없이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는 C.P.E. 바흐를 제외한 모든 곡에 참여하며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중심을 옮겼다. 차이콥스키에서는 협연자이자 리더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크세나키스와 하이든에서는 포디엄에 올라 지휘를 맡았다. 베레시에서는 첼로 수석 자리에 앉아 내부에서 흐름을 조율했다. 이처럼 알트슈태트는 오케스트라 안팎을 오가며 중심축을 여러 방식으로 이동시켰다. 다만 이러한 중심 이동이 모든 작품에서 같은 밀도로 작동한 것은 아니었고, 해석의 방향성은 비교적 분명했으나 음량과 톤 밸런스, 앙상블의 정교함 면에서는 곡마다 편차가 드러났다.



질감과 구조로 풀어낸 현대음악

이번 공연에서 현대음악은 현악기의 질감을 통해 곡의 인상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프레이즈의 진행과 성부의 짜임을 함께 드러내는 방향으로 연주됐다.

크세나키스의 ‘Aroura’는 현악기의 물리적 한계를 시험하는 다양한 확장 주법이 많은 작품이다. 브리지 근처에서 연주해 배음을 극대화하며 금속성에 가까운 음색을 드러내는가 하면, 극단적인 글리산도를 통해 음고의 변형이 촘촘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해석에 따라 극단적인 음량이나 과격한 음향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알트슈태트는 현의 결을 예리하게 세우는 방식으로 곡을 이끌었다. 초반부에는 음량을 크게 밀어붙이지 않은 채 지속음을 내는 방향으로 연주를 시작했고, 이후 질감을 점차 거칠게 조정하며 음향의 층을 쌓아 올렸다. 곡이 진행될수록 배음 사이의 불안정한 울림을 날카롭게 조절하며 질감을 형성했고, 이는 소리의 밀도를 무작정 증폭시키기보다 질감의 엣지를 세우는 방식에 가까웠다.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왼쪽 중앙에 배치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프레이즈에 따라 저음현이 선율의 토대를 만들고, 다른 현악기군이 그 뒤를 잇는 과정에서는 상성부가 저음을 감싸안듯 외곽을 형성하며 음향을 설계했다. 크세나키스가 이 곡에서 소리의 표면과 침투하는 음향층 자체를 핵심 재료로 삼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번 연주는 충격의 강도보다 질감의 진행 방향을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준 해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레시에서도 강한 인상보다 진행 방식과 짜임을 드러내는 접근이 이어졌다. 알트슈태트는 이 작품에서 지휘대가 아닌 첼로 수석 자리에 앉아 흐름을 조율했고, 곡의 민속적 성격을 과장하기보다 내부 리더십을 통해 구조와 균형을 세우는 방향으로 연주를 이끌었다. 춤곡이라는 배경에 따라 즉흥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민속적 리듬의 결을 살리면서도 각 성부의 구조적 짜임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1곡 ‘러슈’에서는 첼로가 끌던 주선율을 악장이 이어받고 다시 비올라가 연결하는 대목에서, 각 악기의 음고에 따라 음량과 표현 범위를 달리 조절하며 상행과 하행의 흐름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어 갔다. 제2곡 ‘우그로시’에서는 동일한 선율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첼로 내부의 톤이 완전히 일체감을 이루지 못해 앙상블이 흔들리기도 했다. 다만 돌림노래를 연상시키는 곡의 특성을 염두에 둘 때, 저현이 리듬의 바닥을 만들고 상성부가 선율을 풀어내는 흐름은 비교적 입체적으로 드러난 편이었다. 마지막 4곡 ‘도번토시’에서는 연주자들의 발구름과 추임새가 더해지며 민속 선율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가 살아났지만, 일부 프레이즈에서는 제2바이올린 뒤편 단원들의 박자가 미세하게 어긋나 앙상블이 맞지 않는 구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춤의 리듬을 유지했고, 민속적 활력과 구조적 짜임이 함께 드러난 편이었다.




두 협연자가 연주를 이끄는 방식, 엇갈린 완성도

협연곡 두 편에서는 각 솔리스트가 앙상블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 가는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오리지널 버전으로 연주된 만큼, 첼로의 화려함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변주 사이의 흐름과 분위기 전환을 어떻게 이어 가는지가 중요했다. 알트슈태트는 이를 선율의 윤곽과 리듬의 추진을 앞세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카덴차에서는 선율을 반복해 전개하는 과정에서 피치카토와 아르코를 교차시키며 셈여림의 대비를 크게 벌려, 첼로가 만들어내는 음색과 표현의 폭을 효과적으로 확장했다. 3번 변주와 4번 변주의 해석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느린 템포를 통해 곡의 분위기를 어둡게 이끌어야 하는 3번 변주에서는 프레이즈의 끝을 한숨 쉬듯 짧게 끊어내며 흐름을 가라앉혔고, 이어지는 4번 변주에서는 첼로와 앙상블의 질감을 한층 거칠게 밀어붙이며 급격한 공기 전환을 시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크레센도 이후 데크레센도로 이어지는 다이내믹을 세밀하게 조정해, 빠른 변주 안에서도 표현의 결을 단조롭게 몰아붙이지 않았다. 비록 일시적으로 톤 밸런스가 흔들리는 경우가 있었음에도 오케스트라는 전반적으로 협연자와 호흡의 결을 맞추며 표현을 이어간 편이었다. 다만 초반부에는 오보에를 비롯한 목관이 상행 음형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않은 전개를 보이기도 했고, 곡이 진행될수록 튜티의 첫 마디 음량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며 균형이 흐트러지는 순간도 있었다. 또한 협연자로 곡을 이끈 알트슈태트 역시 프레이즈의 끝자락에 악센트를 두는 과정에서 활을 미는 보잉의 무게 조절이 충분치 않아 순간적으로 거친 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고전적 절제보다 추진과 캐릭터를 앞세운 해석이었다. 해석의 방향은 분명했지만, 변주 사이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 가는 힘과 오케스트라와의 균형감은 끝까지 고르게 유지되지 못했다.

이에 비해 C.P.E. 바흐의 플루트 협주곡 D단조는 1악장에서는 김유빈의 긴장이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오케스트라와 선율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점차 설득력을 키워 간 연주였다. 1악장에서 플루트의 톤은 낮았고, 아티큘레이션도 완전히 정돈되지 않아 개별 음형이 선명하게 살아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반면 현악기는 날렵한 질감과 시시각각 펼쳐내는 셈여림 조절로 빠른 흐름을 비교적 생동감 있게 살렸다. 이로 인해 플루트와 체임버 오케스트라 사이의 대비감이 크게 벌어졌고, 협주곡이라는 맥락에서 협연자의 표현이 다소 고립되어 들리는 순간도 존재했다. 다만 곡이 진행되면서 김유빈은 오케스트라와 선율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점차 안정감을 찾았고, 일부 반복 어구에서는 포르테로 표현을 이끌며 순간적으로 현과 톤을 맞춰 독주 악기로서의 생동감을 살리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2악장에서는 플루트의 톤이 한층 맑아졌고, 현악기와의 음악적 대화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때때로 루바토를 두어 흐름의 변화를 이끌기도 했으며, 3악장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음량을 조절하며 빠른 템포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아티큘레이션을 유지했다. 김유빈은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을 풀고 보다 안정된 흐름으로 연주를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프레이즈 끝에서 악센트를 더 강하게 주는 순간에는 음정이 살짝 흔들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2악장과 3악장에서 톤과 아티큘레이션이 한층 정돈되며 설득력을 키워 간 연주였다.

두 협연곡 모두 솔리스트가 중심을 형성하는 방식은 비교적 분명했으나, 이를 오케스트라와의 균형 속에서 끝까지 설득력 있게 이어 가는 힘은 서로 달랐다.



악센트 중심의 해석 방식이 남긴 명암

한편 이번 공연 전체를 관통한 해석의 특징은 프레이즈 중간에 악센트를 두어 변곡점을 강하게 세우고,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로 이동하는 다이내믹을 시시각각 조절하는 데 있었다. 하이든 ‘교향곡 70번’에서도 이러한 해석의 틀은 1악장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다만 표현이 다소 격양되며 도입부부터 팀파니의 음량이 과도하게 부각됐고, 앙상블 역시 포르테를 함께 밀어붙이면서 톤 밸런스가 흐트러지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곡 전반에 걸쳐 공명감을 덜어낸 현의 날렵한 질감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는데, 2악장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비교적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반복 어구를 단순히 되풀이하지 않고 프레이즈의 끝을 끊어 내거나, 악장 말미에는 서정성을 살짝 비트는 방식으로 연주를 살아 있는 문장처럼 풀어냈기 때문이다. 반면 3, 4악장에서는 1악장보다 표현의 과잉이 줄어들어 다이내믹의 폭은 한층 매끄럽게 이어졌지만, 2악장을 제외하면 악센트 중심의 해석이 반복되며 곡의 흐름이 다소 단조롭게 이어졌다. 또한 4악장에서는 프레이즈 사이 주선율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표류하는 구간이 있었는데, 이는 악기군 사이의 음량 조절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선율의 윤곽이 일시적으로 흐려진 결과로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하이든은 구조적 긴장감보다 표면의 추진력이 먼저 부각된 연주였다.


이번 공연은 고전, 낭만 레퍼토리와 현대음악을 한 무대에 병치한 프로그램의 성격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낸 무대였다. 각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선율, 질감, 리듬, 그리고 흐름의 결을 풀어냈고, 알트슈태트와 김유빈 역시 협연자, 지휘자, 첼로 수석 자리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호흡하며 곡의 중심을 형성했다. 특히 크세나키스와 베레시에서는 현악기의 질감과 성부의 짜임을 통해 곡의 진행 방식을 드러내는 접근이 비교적 효과적으로 작동했고, C.P.E. 바흐에서는 초반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협연자와 앙상블의 호흡이 점차 살아났다. 반면 이러한 해석이 모든 곡에서 같은 완성도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차이콥스키에서는 변주 사이의 흐름과 오케스트라와의 균형감이 끝까지 고르게 유지되지 못했고, 하이든에서는 악센트와 다이내믹을 중심으로 한 해석의 틀이 분명했음에도 음량 조절과 톤 밸런스의 문제로 곡의 긴장감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베레시 역시 리듬과 구조적 짜임은 살아났지만, 일부 프레이즈에서는 앙상블의 정교함이 흔들렸다. 결국 이번 공연의 성패는 현대곡의 배치 자체보다, 서로 다른 시대의 어법을 한 무대 안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공존시켰는가에 달려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주는 작품마다 다른 리드와 질감, 그리고 흐름의 방향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그 차이를 끝까지 고른 완성도로 밀어붙이는 데에는 곡마다 편차를 남겼다.


글 이강원(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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