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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261회 정기연주회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

  • classiccriticism
  • 2시간 전
  • 2분 분량


이성과 낭만의 그 차가운 간극에 대하여

2026년 2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안드레이 보레이코, 첼로: 니콜라스 알트슈태트


2026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국립심포니)가 내건 시즌 모토는 ‘차갑고도 뜨거운 – 이성적 낭만(Rational Romanticism)’이다. 이는 제8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로베르토 아바도가 추구하는 지적이고 구조적인 미학을 상징한다. 지난 1월 취임 연주회에 이은 이번 2월 정기연주회는 신임 감독과 악단이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추며 색채를 드러낼 기회였으나, 아바도의 건강상 이유로 지휘봉은 안드레이 보레이코에게 넘어갔다. 보레이코는 이미 2023년 국립심포니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통해 호연을 펼친 바 있으며, 러시아 현대 음악의 구조적 해석에 정통한 지휘자다. 이번 프로그램은 열정과 냉소, 감동과 거리두기가 공존해야 하는 난곡들로 결과적으로 무대는 선명한 분석을 보여주었으나, 내밀한 화학작용에서는 명암이 교차했다. 공연의 문을 연 슈니트케의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다’는 이번 시즌의 주제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선곡이었다. 고전적 선율을 차용해 서서히 일그러뜨리는 이 곡의 ‘폴리스타일(Polystylism)’은 낭만주의적 환상을 깨트리는 현대적 이성을 요구한다. 국립심포니는 반복되는 주제부의 변형 과정을 세밀하게 포착해냈으며, 왜곡과 불협화음으로 치닫는 과정에서도 리듬감을 잃지 않는 기민함을 보였다. 그러나 슈니트케 특유의 ‘반전’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낭만과 차가운 왜곡이라는 양극단의 대비가 필수적인데, 이날 현악 파트의 연주는 다소 평면적인 긴장감에 머물렀다. 특히 금관이 주도하는 불협화음과 현의 주제 선율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 변형의 층위가 조금 더 단계적이고 극적으로 조율되었다면 곡이 내포한 섬뜩한 해학이 더 살아났을 것이다. 리듬은 살아있었으나, 풍자의 날카로움은 다소 무디어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공연의 백미이자 논쟁적인 지점은 니콜라스 알트슈태트가 협연한 프로코피예프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Op.125’였다. 고음악(Early Music)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 음악을 해석하는 알트슈태트는 첫 보잉부터 강렬했다. 그는 과도한 바이브레이션을 배제한 ‘논-바이브레이토(Non-vibrato)’ 주법과 거친 텍스처를 통해, 낭만적 감상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작품 본연의 차가운 야성을 드러냈다. 1악장에서 알트슈태트는 오케스트라의 템포와 미세하게 어긋나는 루바토(Rubato)를 구사했는데, 이는 앙상블의 불안이라기보다 독주 악기와 거대 관현악이 대립하는 곡의 서사를 극대화하는 음악적 긴장으로 읽혔다. 2악장에 이르러 그의 기교는 절정에 달했고, 서정적 멜로디와 금속성의 차가운 색채가 교차하는 순간은 압도적이었다. 3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안정을 찾았으나, 찰나의 순간에 등장하는 금관과 현악의 짧은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다소 거칠게 처리되며 솔리스트가 쌓아 올린 긴장감을 흐트러뜨리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독주자의 개성은 분명했고, 구조 중심적 해석은 작품의 현대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와의 음향적 결속력은 완전한 유기성에 이르렀다고 보긴 어려웠다.




2부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 Op.10’은 지휘자의 분석적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동시에, ‘대체 지휘’의 한계가 노출된 지점이었다. 19세 쇼스타코비치의 열정과 냉소가 공존하는 이 곡에서, 1악장 목관 파트의 독주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앙상블을 보여주었다. 다만 플루트 솔로 등에서 프레이징의 호흡이 다소 짧게 끊어지며 유기적인 선율미를 살리지 못한 점은 옥에 티였다. 지휘자는 시종일관 명확한 비트와 세밀한 지시로 오케스트라를 통제했다. 2악장 피아노의 타건은 현대적 냉소를 정확하게 짚어냈고, 3악장 렌토(Lento)에서는 현악 솔로와 목관이 주고받는 내밀한 대화가 살아나며 이날 연주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그러나 4악장으로 넘어가며 악기 간 밸런스 문제가 두드러졌다. 현악군의 볼륨이 지나치게 비대해 다른 성부를 마스킹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타악기 솔로의 미세한 조율이나 음색의 결정은 곡의 생경함을 확장하기에는 표현의 폭이 좁았다. 무엇보다 지휘자가 추구한 ‘안정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은 금관 파트 등에서 지나치게 기계적인 리듬감으로 귀결되어,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긴장감을 휘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갑작스러운 지휘자 교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국립심포니는 흔들림 없이 완주했다. ‘차갑고도 뜨거운’이라는 시즌 테마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의 의도는 명확했고, 러시아 음악에 정통한 지휘자와 개성 강한 협연자의 존재감은 빛났다. 하지만 물리적 시간의 부족 탓이었을까. 정교한 분석(이성)은 있었으되, 그것을 넘어선 악단 고유의 색채와 유기적인 호흡(낭만)은 완전히 개화하지 못했다. 보레이코의 지휘는 안전했으나 모험적이지 않았고, 오케스트라는 성실했으나 과감하지 못했다. 이번 공연은 국립심포니가 ‘이성적 낭만’이라는 모토를 완성하기 위해, 정밀한 앙상블 조율과 더불어 악기군 간의 밸런스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비록 방향성과 개성의 측면에서 아쉬움은 남았으나, 예측 불가능한 변수 속에서도 일정 수준의 퀄리티를 담보해낸 국립심포니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클래식음악평론가 조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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