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이건음악회 : 노르웨이 챔버 오케스트라 현악 6중주단
- classiccri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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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영감과 목소리를 품은 하나의 음악회”
2025년 11월 15일 롯데콘서트홀
제36회 이건음악회에는 노르웨이 챔버 오케스트라(The Norwegian Chamber Orchestra, 이하 NCO)의 현악 6중주단이 무대에 올랐다. 아리랑 편곡 공모 당선작을 포함해 총 열 곡이 연주된 이번 음악회는, “예술과 사회의 연결”이라는 주최 측의 모토에 걸맞게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 다양한 영감과 목소리를 담아 청중을 맞이했다.
낯선 아름다움, 그리고 용기 있는 도전
첫 곡부터 객석에는 가벼운 당혹감과 함께 독특한 긴장감이 흘렀다. 거의 어둠에 가까운 조명 아래, 첼리스트 올레 에이리크 레에가 아벨의 ‘Arpeggio in d minor (Prelude in C Major, BWV 846를 연상시키는 프렐류드’를 독주로 연주하며 문을 열었다. 다소 급작스럽게 시작된 듯한 오프닝이었지만, 오히려 청중의 초점을 단번에 무대로 모으는 효과를 냈다. 저음부에서 길게 이어지는 입체적인 울림은 화성의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연주의 깊이를 더했다. 첫 곡이 끝나갈 무렵 비올리스트 한네 모에 셸브리드가 무대로 걸어 들어오며 캐롤라인 쇼의 ‘Limestone and Felt’가 시작되었다. 두 연주자는 초반 피치카토부터 호흡과 템포를 자유롭게 조정하면서도 안정된 화성을 잃지 않는, 높은 수준의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다만 곡의 본질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피치카토와 스타카토가 공연장 잔향과 겹치며 선명도가 다소 흐릿해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어지는 베토벤 ‘현악 3중주 3번 G장조, 3악장 Scherzo’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카트리나 첸이 합류하며 사운드의 중심축이 조금씩 확장되었다. 덴마크 전통곡 ‘Stædellil’에서 또 한 명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로즈 앙젤리크 외빙에가 등장하고, 다섯 번째 곡인 그리그 「홀베르그 모음곡 Ⅴ. Rigaudon」이 끝난 후 비올리스트 마르테 그림스루드 후숨과 첼리스트 아우둔 안드레 산비크가 합류하면서 비로소 여섯 명이 모두 무대에 선다.
첫 6중주 편성으로 들려준 앙상블의 하모니는 풍부한 다이내믹과 자유로운 제스처, 그리고 그 안에서 잃지 않는 조화를 특징으로 했다. 각 연주자의 개성이 또렷이 드러나면서도,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다만 완벽한 정확성보다는 자유로운 표현을 우선한 듯 몇몇 바이올린 파트에서 미세한 음의 실수가 포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연주자들은 끝까지 자신감 있는 태도와 에너지로 음악을 밀고 나갔다. 이 또한 이들이 추구하는 미학의 한 단면으로 읽혔다.
진지한 전통을 잃지 않은 ‘정화된 밤’
중반부의 쉰베르크 ‘정화된 밤’은 이 프로그램의 중심축이었다. 공연 해설자 홍승찬 교수가 리하르트 데멜의 시를 낭송한 뒤 연주가 시작되자, 앞선 곡들에서 축제와도 같은 활기를 보여주던 연주자들의 표정과 제스처는 한순간에 진지한 몰입으로 전환되었다.
NCO 6중주단은 비교적 짧은 호흡 속에서 강약과 긴장을 치밀하게 조율하면서 쉰베르크 특유의 밀도 높은 감정을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여섯 악기의 음색을 하나로 녹여낸 듯한 통일된 사운드는, 앞선 다섯 곡과 분명히 다른 세계를 열어 보였다. 이들에게 “실내악적 자유로움과 관현악적 스케일이 공존하는 앙상블”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네 번째 부분, 첼로가 남성 화자의 음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에서의 부드러운 칸틸레나는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 구간 이후 템포가 조금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6중주의 앙상블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지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NCO 6중주단의 ‘정화된 밤’은 이번 음악회에서 이들의 예술적 깊이와 해석의 방향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연주였다.
관객과 마주 선, 예술가의 영감
후반부는 연주자의 영감과 관객의 호흡이 직접 만나는 시간이었다. 두 첼리스트는 마이클 잭슨의 ‘Smooth Criminal’을 자신들만의 편곡으로 들려주며 공연장의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뒤집었다. 아우둔 산비크는 연주 중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메인 리프를 자연스럽게 삽입하며 장르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들었다.
이어서 연주된 룬 톤스가드 쇠렌센의 ‘Shine You No More’에서는 곡 중반에 아리랑 선율이 모습을 드러났다. 북유럽 민속 리듬 위에 한국적 선율을 겹쳐 놓는 이 짧은 삽입은, 이번 투어가 한국 관객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지금 이 자리에서만 가능한 음악”이라는 생동감을 주었다.
BTS의 ‘Dynamite’ 편곡은 현악기로 옮겨졌을 때 특유의 그루브가 완전히 살아나지는 못했다.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곡 자체가 지닌 에너지와 연주자들의 솔직한 즐거움 덕분에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마지막 곡인 아리랑 편곡 공모 당선작, 전다빈의 ‘빛아리랑’은 이 음악회의 정체성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 준 피날레였다. 빛줄기를 묘사하는 반복 음형과 피치카토 주법, 여기에 아이리시 풍의 화성 진행을 결합해 한국적 정서와 북유럽적 색채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사운드를 만들었다. 한국 관객과의 소통을 향한 뚜렷한 의도가 분명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만큼 욕심 많았던 음악회
36년간 이어져 온 전석 무료 초청 공연, 그리고 “예술과 사회의 연결”이라는 이건음악회의 기획 의도 속에서, 이번 NCO 현악 6중주단의 무대는 예술가의 영감을 관객에게 전하고 또 그들과 교감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시도로 기억될 것이다. 독창적인 조명과 연출, 연주자들의 과감한 퍼포먼스, 고전과 현대, 대중음악과 전통음악을 넘나드는 폭넓은 선곡과 편곡은 하나의 음악회 안에 담아낼 수 있는 표현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인지 묻는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분명한 지향점을 가진 프로그램이었지만,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보여주고자 한 탓에 정작 NCO 현악 6중주단이 실내악 앙상블로서 그 중심과 방향성을 충분히 보여주기에는 여유가 다소 부족해 보였다.
그럼에도 이번 제36회 이건음악회는, 오늘날의 연주자들이 어떻게 전통 레퍼토리와 동시대 감각,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한 무대 위에서 조율해 내는지를 잘 보여 준 사례였다. 다채로운 영감과 목소리를 한 자리에 모으려는 이들의 시도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용기 있었고, 그 자체로 지금을 살아가는 청중에게 의미 있는 제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클래식음악평론가 조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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