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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음(音)의 만화경

  • 작성자 사진: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2021년 11월 24일
  • 3분 분량

신박 듀오의 데뷔음반 발매기념 피아노 리사이틀 <HADA>

평론가 최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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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스트들의 활동이 주를 이루는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전문 피아노 듀오팀, 신박듀오(신미정 41, 박상욱 31)의 등장은 매우 의미있다. 빈 유학시절 중 한인 교회에서 만난 이들은 2013년에 듀오 팀을 결성하고 불과 2년 후 최고 권위의 뮌헨ARD 국제 콩쿨 피아노 듀오부문에서 준우승을 거머쥐는 쾌거를 누렸다. 그런 이들이 올 9월 자신들의 첫 데뷔 앨범 <HADA>를 발매함과 동시에 10월 2일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기념리사이틀을 가졌다. 프로그램은 데뷔 앨범의 수록곡들을 주축으로 구성했으며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여러 나라들의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담아냈다. 이렇게 이들의 네 손을 통해 빚어진 작품들은 마치 만화경 속을 들여다보듯 다채로운 소리들의 재밌는 향연(饗宴)이었다.


1부는 차분한 검정색 의상의 신박 듀오가 한 대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피아노 연탄을 선보였다. 신미정이 중고음역 대의 프리모를 맡고 박상욱이 중저음역대의 세컨도를 맡으며 시작된 이들의 첫 곡은 슈베르트(F.Schubert,1797-1828)가 말년에 작곡한 <네 손을 위한 환상곡 D.940>이었다. 신박 듀오의 해석은 이 곡의 낭만성에 집중하기보다 빈 전통 피아니즘의 아카데믹한 해석을 수렴한 듯 곡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에 충실하며 적절히 낭만적인 울림을 부여했다. 곡의 첫 도입부부터 이들의 연주는 인상적이었다. 프리모는 주제선율을 섬세한 터치로 담담하게 노래하며 애수감을 자아내고 이에 맞물려 세컨도가 저음부의 베이스를 살리며 밸런스의 안정감을 꾀했다. 이러한 은은한 울림은 작곡가의 시정(詩情)을 환기시키며 청중의 가슴 속에 깊은 감흥을 안겨주었다. 활기차지만 저변에 불안감이 도사리고있는 곡 중간부 Scherzo부분은 이들의 빛나는 합이 돋보였다. 3박자 리듬을 충실히 살리며 빠른 음형의 패시지들을 능

수능란하게 서로 주고받는 장면은 마치 곡예 줄타기를 하듯 아찔하게 연출되었다. 곡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마지막 Finale의 격렬한 푸가(Fuga)부는 이들의 연주를 통해 구조적인 미(美)가 돋보였다. 페달을 절제하여 푸가의 각 성부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악상의 흐름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다이내믹을 구축해갔다. 동시에 빛나는 완급조절로 감정선을 강렬하게 끌고가며 곡을 마무리지었다. 이들은 곡의 본질에 다가선 순수하고 아름다운 해석으로 대다수 청중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안겨주었다. 다음으로 이들이 연주한 곡은 원래는 관현악을 위해 쓰여졌지만 작곡가 자신이 피아노 연탄으로 편곡한 차이코프스키(P.Tchaikovsky,1840-1893)의 <1812년 서곡>이었다. 신박듀오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방불케하는 풍성한 블록버스터급 사운드를 들려주며 앞선 분위기의 반전을 꾀했다. Eb조성의 라르고풍 도입부에서 이들은 깊은 페달링과 상체를 실은 터치로 곡의 장중함을 살려내며 힘찬 첫 출발을 알렸다. 러시아군과 프랑스 군의 전쟁 상황이 묘사되는 격렬한 중간부와 후반부에서는 이들은 파워풀한 타건과 현란한 테크닉으로 긴박한 전투상황을 표현했고 중간중간 세컨도가 베이스 음역을 묵직하게 내리치며 마치 대포를 연상케하는 압도적인 소리를 들려주었다. 중후반부의 빠른 상하행 스케일 음형들에서 프리모가 살짝 흔들리는 듯 했지만 이들의 강렬한 드라마는 이 아쉬움을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2부는 이들이 갈아입은 의상만큼 화려하고 반짝이는 음악 축제의 장(場)이었다. 두 대의 피아노에서 진행된 2부는 신미정이 퍼스트 피아노를 맡고 박상욱이 세컨드 피아노를 맡았다. 프랑스 특유의 에스프리와 스페인의 정열이 어우러진 첫 곡, 라벨 (M.Ravel,1875-1937) 의 <스페인 광시곡>에선 색감 충만한 연주가 돋보였다. 이들은 서스테인 페달과 댐퍼 페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건반을 탐닉하며 프랑스 음악의 다채로운 색채감을 십분 살려냈다. 그 예시로 첫 곡 <밤의 전주곡>에서 깊은 페달링과 섬세한 터치를 구사해 비현실적이고 은밀한 사운드를 연출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고요한 남유럽 밤풍경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진듯했다. 연주자의 고혹적인 음색이 돋보였던 세 번째 곡 <하바네라>를 지나 마지막 곡 <축제>에서는 역동적이고 과감한 표현력이 압권이었다. 이들은 곡 후반부의 화려하고 분주한 빠른 음가 패시지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합을 맞추며 청중들을 황홀한 축제의 현장 속으로 끌고 갔다. 다만 아쉬운 점은 두 번째 곡 <말라게냐>에서 이들의 템포가 다소 느려 생동감 넘치는 곡 분위기와는 잘 안 맞지 않았나싶다. 이들의 마지막 곡, 모차르트(W.A Mozart, 1756-1791)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 K.448>는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큼 유쾌함과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이들은 가벼운 터치를 바탕으로 맑고 청명한 음색을 만들어 청중들에게 기분 좋은 상쾌함을 전파시켰다. 속도감 있는 진행이 돋보인 1악장은 악보의 음형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프레이징을 맺고 끊음이 탁월했다. 또한 2주제에서 같은 꾸밈음이 나올 때마다 한 옥타브를 올려서 연주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참신함이 깊은 재미를 안겨주었다. 2악장은 이들의 낭랑한 소노리티가 인상적이었으며 2주제에서 두 대의 피아노가 서로 대화하듯 들려준 놀라운 음악적 색깔의 일치는 감흥을 넘어 짜릿한 쾌감까지 선사했다. 활기찬 론도 형식의 3악장은 그야말로 이들의 놀이터였다. 즐기며 연주하는 이들의 모습과 민첩한 손가락 독립에서 비롯된 또랑또랑한 음색, 생동감 넘치는 해석이 모두한데 어우러져 청중들에게 깊은 청량감을 선물했다. 이 공연의 피날레에 걸맞게 화려하면서도 깊은 감흥을 안겨준 연주였다.

모차르트의 연주가 끝나고 상쾌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이들은 무려 5곡의 앵콜을 들려주었다. 프랑스 음악만의 환상적인 울림과 은은한 미감을 자아낸 라벨과 드뷔시의 포핸즈 곡들, 빈 왈츠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준 신박 듀오가 직접 포핸즈로 편곡한 요한 스트라우스 2세(J.StraussⅡ,1825-1899)의 <박쥐 서곡> 그리고 이들의 매력 넘치는 재치와 엔터테이너적인 면모가 넘쳤던 리스트(F.Liszt,1811-1886)의 <헝가리 랩소디 2번> 포핸즈 연주까지. 마치 진수성찬을 맛보듯 즐길거리가 풍성했던 이번 공연을 통해 신박듀오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서로를 배려하여 긴밀한 앙상블을 구축하고 여기서 비롯되는 오색찬란한 음(音)들이 피아노 듀오의 정수와 묘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그들이 연주장소로 택한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의 적절한 잔향과 따뜻한 어쿠스틱은 연주자의 표현을 한껏 살려주었다.


피아노 듀오는 솔로로 연주할 때와 아예 다르다. 듀오의 정교한 작업방식은 오랜 시간을 함께 붙어있어야하기에 흔히 형제, 자매같은 혈연지간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남으로 만나 단기간에 환상의 호흡으로 다수의 콩쿨에 입상한 신박 듀오는 별종(別種)이라 할만큼 특별한 케이스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들이 펼칠 활약들이 더욱 기대된다. 현존하는 피아노 듀오계의 거장 라베크 자매 (Katia&Marielle Labeque)나 탈&그뢰투이젠 (Duo Tal&Groethuysen) 처럼 이들도 자신들의 색깔을 무르익혀 조만간 피아노 듀오계에 신박(ShinPark)한 바람을 불어넣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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