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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정석’, 음악적 언어의 통일성으로 보여주다

  • 작성자 사진: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2021년 11월 24일
  • 2분 분량

클라라 주미 강 & 김선욱 듀오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中 1, 4, 8, 7번 연주


평론가 차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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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묵자”. 이 유행어는 10여년 전 TV개그 프로그램의 인기코너 <대화가 필요해>에서 가족간 의사소통의 부재로 쌓여있던 오해들이 밥상에서의 대화로 인해 풀리고는 민망함에 상황 무마를 위해 하는 말로, 전체 극을 관통하는 일종의 시그널이다. 가까운 사이더라도 대화는 필수적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앞선 예시와는 달리 클라라 주미 강 & 김선욱 듀오는 이런 신호가 불필요하다. 그들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로 가장 이상적인 ‘대화의 정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은 사전인터뷰에서 바이올린 소나타는 “두 악기가 동등한 게 핵심”이라고 밝혔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투어의 첫 번째 공연, 첫 번째 프로그램은 1번 소나타로, 앞서 밝힌 동등한 위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짧은 시작 악구는 깔끔한 활쓰기로 무대를 주시하던 청자가 음악에 그대로 몰입하게 했다. 이후 바이올린이 주제 선율을 먼저 이끌면서 클라라 주미 강 특유의 섬세한 소리 설계가 귀에 먼저 들어왔다. 피아노의 상대적으로 짧은 울림을 고려하여 바이올린에 적절한 무게만을 실어 음악적 언어의 통일성을 구축하였고 이는 선율을 주고 받을 때 비슷한 결로 진행해나갈 수 있는 요소였다. 피아니스트 김선욱도 그녀의 바이올린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주미 강의 바이올린은 묵직하지 않고 맑은 음색으로 넓은 범위의 표현을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상대적으로 큰 피아노의 음량에 압도당할 수 있다. 이에 김선욱은 바이올린 음량의 한계치를 인지하고 작은 음량이지만 명료한 터치로 치밀하게 서로의 합을 조율해나갔다. 1부의 두 번째 순서인 단조의 4번 소나타로 넘어가면서 무르익어가는 합이 돋보였다. 주미 강은 데크레셴도로 마무리되는 끝음을 바이올린 몸통을 위로 들어 여음이 남으면서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녀가 철저히 계산해 만들어내는 울림은 다이나믹의 대비와 분위기 전환 등 의도한 변화로의 도달이 빠르게 하면서 과하게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김선욱은 짧게 쪼개지는 음들은 페달을 적게 사용하여 음 하나하나가 부드러우면서도 명료하게 연주하며 서로 재빠르게 유연한 흐름들을 맞물려 이어나갈 수 있게 했다.

2부, 특별히 8번 소나타에서는 색다르게 활달한 대화 유형을 볼 수 있었다.

주미 강이 활의 속도와 양을 집중적으로 조절하는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났다. 소나타 형식의 1악장 제시부의 아르페지오의 상승악구에서도 비브라토를 일정하고 좁은 폭으로 사용하며 상승하는 음들이 날 것으로 명확하게 들렸다. 1악장(Allegro assai)과 3악장(Allegro vivace)은 중음역대 구간이 많아서 연주방법에 따라 과하게 극적이거나 평이하게 흘러갈 수 있었지만 그녀는 활 사용량과 무게를 기존보다 더 최소화하고 가속도를 붙여 가벼우면서 유별히 빠른 속도감을 구현해내 신선함을 주고 고조된 1부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음량과 음악적 흐름 사이의 비중을 의도적인 덜어냄을 통해 조절했다. 김선욱도 그에 맞게 얕지만 단단한 건반터치로 빠른 반응 속도를 이끌어냈다. 다만 절제로 인해 음 개별의 선명도가 떨어지고 박자의 흐름을 알아차리기 어려워 두 연주자가 서로 어긋나는 리듬으로 호흡이 잠시 흔들렸다. 그들은 금방 조율해내 빠른 회복 탄력성을 지닌 연주자들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화합으로 이르는 과정의 토론처럼 하나의 의도적인 구상으로 완전히 납득되기 위해서는 속도감의 절제로 설득력을 더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네 개 악장을 지닌 단조의 7번 소나타로, 그 어느 곡보다도 명상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마무리했다. 주미 강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화 유형이 다양하고 많을수록 좋”다고 언급했는데, 2부는 이에 부합하는 연주였기에 아쉬움보다 새로움이 더 크게 다가온 연주였다.


일방적이거나 무조건적인 일치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클라라 주미 강과 김선욱 듀오는 각자의 위치는 분명하게 지키면서도 동등한 눈높이 시작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상적인 쌍방소통의 적절한 예시를 담은 지침서와도 같았다. 더불어 고리타분한 예시들만이 아닌 색다른 예외까지 첨부되어 있는 알찬 연주였다. “밥 묵자”가 아닌 진정한 대화가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하는 교과서였다. 이 듀오의 ‘대화의정석’ 시리즈가 길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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