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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연주 여정을 함께 한다는 것

  • 작성자 사진: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2021년 11월 10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11월 24일

하랑 피아노 듀오 연주회 2021.10.16. 금호아트홀 연세

평론가 이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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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독주의 대가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주목 받는 듀오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많은 경우 독주 무대를 위해 애쓰는 에너지만큼 쏟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의 듀오 연주에서 종종 아쉬움을 삼 킨다. 한국인 피아니스트들의 빛나는 활약으로 세계는 지금 태동하고 있는 국내 예비 스타들에 주목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배재성과 선율은 이미 또래 음악가들 사이에서 선두 그룹에 있는 주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하랑’이 라는 팀을 결성하여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연주를 금호영체임버콘서트에 올렸다. 화려한 이력에 아직 조명되지 않은 피아노 듀오 무대는 두 사람에게 새롭게 도약하는 시험대가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 거리두기 시행으로 이전에 비해 객석 빈자리 수가 늘었다고 감안했지만 금호아트홀 연세는 구두통형 홀의 구조에도 여전히 잔향 지속시간이 길어 연주자의 기민함이 요구되었다. 아렌스키의 《모음곡 제 1번, Op.1 5》 〈로망스〉에서 배재성은 깊지 않은 댐퍼 페달을 적절히 사용하여 제 1피아노의 첫 선율인 여린 악상의 2도를 청중에게 성실히 전달하였다. 제 2피아노를 담당한 선율은 요란해지지 않는 트릴을 구사하며 지속적으로 신비롭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기다림 없이 아타카(attaca)로 시작한 〈왈츠〉에서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안정 된 템포의 3박자를 유지하였다. 주선율의 형태나 박자가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재빠르게 흐르는 부가적 반음 계 선율이나 6연음 등의 매끄러운 처리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하랑 듀오는 손가락과 손목의 움직임을 드러 내지 않고 민첩하게 딱 들어맞는 박자감을 보여주었다. 〈폴로네이즈〉도 마찬가지다. 3연음, 32분음표를 현란하게 그려낼 때 폴로네이즈 리듬을 결코 아스라이 맞추려 기다릴 필요 없이 넘치는 탄력으로 연주하였다. 아렌스키의 서정적 우아함과 화려함에 이어 1부의 마지막은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B-flat 장 조, Op.56b》를 선택했다. 절제된 감정으로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여 절대음악의 정수를 보여 주겠다 는 포부였다. 제 1피아노 선율과 제 2피아노 배재성은 테마를 통해 앞으로 피날레에 다다를 때까지의 계획을 제 시했다. 주제는 간결하고 단순했다. 그리고 선율과 리듬은 명확했다. 반복마다 두 번째는 모두 여리게 연주함으 로써 완급 조절하여 하이든의 《펠트파르티엔》 제 6곡의 2악장 B-flat 장조의 주제를 각인시켰다. 그리고 발전적 변형 기법으로 앞으로 다양한 변주를 거치겠지만 결국 ‘승리’라는 결말을 예고했다. 다채로운 8개의 변주에서 주 제의 작은 동기들이 새롭게 발전하고 변형될 때 충실한 음향으로 주선율과 내성을 구분해내었다. 그리고 비중 있게 나타난 리듬의 교차, 분산화음, 3도, 6도, 그리고 8도와 같은 여러 화음이 중복되는 과정에서도 동일했다. 제 5 변주곡에서 이어진 바레이션 6의 연타와 16분음표의 음형들은 빠짐없이 깔끔하고 절도 있었다. 몸의 움직 임조차 낮추어 절제하고 비축해 둔 에너지를 온 몸으로 확장시킨 후 7 변주로 이어지는 전환은 청중으로 하여금 강한 몰입도를 선사했다. 소프트 페달로 전환된 음색은 부점리듬도 포근했다. 피날레에서 마침내 달려온 시간을 회고하며 고요 속에 등장한 스케일을 뒤로 꽉 찬 화음과 호흡으로 승리를 외쳤다. 2부에 등장한 하랑 듀오는 인사 후 자리에 앉자마자 제 1피아노 배재성의 호흡으로 재빠르게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제 2번 C장조, Op.17》 〈Introduction C장조〉를 시작하였다. 1부 초반에 느껴졌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 라지고 두 연주자는 크고 작은 악상의 반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홀의 울림 탓으로 번지는 연타가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적절한 배음으로 두 피아노의 합이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Valse G장조〉에서는 매우 긴박한 흐름 속에서 메노 모소(meno mosso)의 대조로 낭만 선율을 부각시켰다. 다부진 타건에 높이 도약한 음역 연타 를 pp로 연주해 음악은 테크닉에 결코 방해되지 않았다. 〈Romance in A-flat 장조〉는 어떤 방향이든 청중의 입장에서 자신이 상상하는 로망스를 기대하게 마련이라 표제가 주는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일정한 톤으로 열심 히 군더더기 없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차오르는 질문은 ‘그래서 로망스는 어디에 있나?’였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나의 로망스고, 무대 위 연주자에게까지 강요할 수 없는 내면의 소리지만 말이다. 아타카로 이어진 〈Tarantella in c단조〉에서 또다시 듀오의 장점이 부각되었다. 절제하고 아껴둔 악상을 가파르게 벌어지는 각도 로 전투적 테크닉을 선보이며 fff까지 도달했다. 거기서 누구 한 사람 뒤쳐지지 않고 어긋남 없는 폭발적 합이 표출되었다. 마지막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제 1번 g단조, Op.5》에서도 역시 파트를 바꾸어 제 1피아노를 선율이, 제 2피 아노를 배재성이 맡았다. 〈Barcarolle g단조〉는 붉은 노을에 비친 반짝이는 물결 위에 작은 배 한 척이 연상되 는 연주였다. 두 연주자의 3연음이 오롯이 하나 되었고 16분음표 진행에서 물결이 범람하지 않도록 드러내지 않은 채 잔잔하게 유지시키는 섬세함이 돋보였다. 〈Oh night, oh love D장조〉는 트릴, 분산화음, 반음계적 선율, ppp까지 이르는 여린 악상 등 내재된 요소들에 모두 충실했다. 〈Tears g단조〉는 매우 작은 악상에서 시작해 깊 은 슬픔에 빠진 분위기에 잘 도달하였다. 게다가 mf의 악상이지만 소프트 페달을 사용함으로써 약음이 아닌 오 로지 음색의 변화를 시도했다. 긴 호흡으로 이어져 sf와 fff로 터진 마지막 절규는 서서히 꺼져가는 불씨가 되어 장송으로 마무리했다. 아타카로 연결된 〈Easter g단조〉에서 제 2피아노 배재성의 연달아 세 번 나오는 5도 화음 은 fff 악상으로 피아노의 현이 ‘징’하고 울릴 만큼 강했다. 빼곡히 찬 화음의 향연과 높은 음역대의 옥타브는 마 지막 순간까지 쉴 세 없이 강력하게 질주했다.

이미 완성된 테크닉과 넘치는 열정, 그리고 지구력은 각자 이미 충분히 갖춘 자질이다. 오랜 시간 피아노 앞 에서 홀로 싸우며 다져진 음악성과 실력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그러나 피아노 듀오라는 장르에서 만큼은 아직 정제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먼저는 두 연주자의 음색이 꽤나 달랐다. 대체적으로 배재성은 직선, 선율은 곡선이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울림이 덜하고 다른 면에서는 예리하지 못함으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곡의 끝에서 선율은 음이 사라질 때까지 건반에서 손을 놓지 않은 반면 배재성은 음을 삭제시키고 다음 곡 을 위해 악보를 넘기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배재성은 종이 악보를 선택해 스스로 악보를 넘 겼고, 선율은 태블릿pc를 이용했다. 차분히 악보를 넘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페이지 터너가 반 드시 필요했다. 아니면 동일하게 태블릿pc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었으리라. 이미 국내에서는 라이징 스타로 각 광 받고 있어 더더욱 앞서 언급한 1차원적 요소가 크게 아쉬웠다. 팀 결성 후 처음 가진 콘서트다. 계속 발표될 연주에서 개인의 역량만큼이나 앙상블에서도 주요하게 조명 받는 피아니스트로 증진할 것을 바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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