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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오푸스 제27회 정기연주회 ‘오중주의 서랍’

  • classiccriticism
  • 5월 29일
  • 2분 분량

사람마다 가슴속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 하나쯤은 품고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 그런 기억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가 어느 한 순간 찬란한 빛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앙상블오푸스의 정기연주회는 항상 어떤 제목을 가지고 다가온다. 지난 4월 3일 예술의전당 챔버홀에서 열린 27회 정기연주회의 타이틀은 ‘오중주의 서랍’이었다. 이번 프로그램이 오중주로 구성되겠다는 추측과 동시에 서랍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머물렀다. 오래 전 소중한 무언가를 보관해 놓은 그 곳,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주선 그 곳. 천천히 그것을 열면 내 마음 속 낡은 유성기가 돌아가듯 서늘한 추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프로그램 팜플렛에는 ‘오중주라는 하나의 형식이 시대와 작곡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되어 왔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실내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적혀 있다.


바이올린에 타케자와 쿄코와 최정민, 비올라에 김상진과 서수민 그리고 첼로에 이재리가 연주한 모차르트의 ‘현악오중주’에서 시작 부분의 첼로는 첫 박의 스포르찬도에 이어 금세 부드러운 음형을 그려내었다. 마치 서랍을 여는 순간의 기대감과 여운을 음향으로 형상화하는 듯했다. 이어 4박자로 전환되며 제시되는 코드에서 상성부의 바이올린은 절제된 보잉을 통해 온화함 속에 분명한 긴장을 형성하였다. 두 대의 비올라는 음향의 중심축을 이루며 밀도 높은 울림을 만들었고, 마지막 악장에서 앙상블은 경쾌한 반음계 진행 속에 밝은 색채로 마무리되었다.


이어진 류재준의 ‘색소폰과 현악사중주를 위한 오중주(세계 초연)’는 서랍 속 찬란한 빛의 역할이다. 색소폰의 독특한 음색은 오래된 기억을 환기시키며, 현악과의 결합 속에서 그것을 현실의 음향으로 되살려내었다. 현(바이올린 송지원/최정민, 비올라 서수민, 첼로 이정란)에 의해 제시된 붓점 리듬의 아르페지오 음형은 곧이어 등장하는 알토 색소폰(브랜든 최)에 의해 반복되고 변주됨으로써 오늘 연주회의 타이틀 ‘오중주의 서랍’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였다. 현은 추억의 구체성을 드러내고 색소폰은 그 위에 따뜻한 질감을 입혔다. 주제 선율은 소소한 변화를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베이스의 긴박한 리듬을 시작으로 한차례 음향의 격동을 지난다. 그러나 이내 다시 초반의 선율을 회복하며 먼 곳을 바라보듯 마무리된다. 2악장에서는 현의 삼분박 리듬과 색소폰의 이분박 리듬이 교차하면서 1악장의 서정적 흐름을 지금 이 순간의 현장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3악장은 갈등이 사라진 듯 차분한 색소폰의 선율로 시작하고 그 선율을 현들이 이어받는다. 마치 서정적인 화해의 왈츠를 권유받는 듯하다. 4악장은 다시 현의 급박한 상승•하강 아르페지오로 시작한다. 긴장이 지속되다가 차분한 결말을 맞는 듯하지만 처음의 급박함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현의 화해적 제스처 위에 소프라노 색소폰의 크레센도가 겹쳐지며 밝은 색채로 마무리된다.

류재준의 색소폰 오중주는 바로 ‘오중주의 서랍’에서 꺼낸 ‘미래의 가능성’으로 읽힌다. 클래식음악에서 드물게 사용되는 색소폰을 중심으로 오중주를 구성하였고, 음색적 혼합을 통해 화성적 효과를 확장하였으며, 서랍 속의 보석을 발견하듯 전개되는 유려하고 서정적인 선율은 현대 실내악의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서랍이 있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피아노와 타케자와 쿄코, 송지원, 김상진, 이정란이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오중주’가 놓인 현재의 서랍이다. 고전적 형식을 계승하면서 그 내부에 현대적 변형을 접목한 이 작품은 피아노의 강렬한 저음과 투명한 고음의 극적 대비로 시작한다. 이 작품은 전쟁 중이었던 시대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무겁고 침잠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3악장 스케르초에서 분위기는 잠시 환기되기도 하지만 4악장에서는 다시 고통의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피날레에서는 현의 유쾌한 끝음 처리와 함께 피아노의 맑고 차분한 음이 더해지며 밝은 색채로 마무리된다.


‘오중주의 서랍’은 ‘실내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리 의도된 것은 아니겠지만,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재에 대한 하나의 예술적 해답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각 서랍에서 꺼내진 오중주 모두 피날레에서 희망찬 미래를 밝은 색채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의 연주가 남긴 메시지는 고통을 견딘 자들이 맞이하는 내일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글 신철호(클래식음악평론가)


※ 이 글은 ≪음악춘추≫ 2026년 5월호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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