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라이징스타’를 위한 배려

  • 작성자 사진: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2021년 11월 12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11월 24일

2021 금호아트홀 활의 춤 시리즈, 비올리스트 이한나 X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평론가 정혜수




프로코피예프(S. Prokofiev, 1891-1953)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Op. 64>부터, 리게티

(G. Ligeti, 1923-2006)의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 녹스(G. knox, 1956-)의 <비올라 스페이

스 제8번, “위로, 아래로, 옆으로, 둥글게”>, 클라크(R. Clarke, 1886-1979)의 <비올라와 피아

노를 위한 소나타>까지. 그들의 연주 프로그램은 보통의 음악회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생소한

이름과 곡으로 가득했다. 모두 1900년대 이후 작곡된 음악이기 때문이다. 비올리스트 이한나

는 금호아트홀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새로운 레퍼토리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며, 관객에게 “비

올라가 할 수 있는 활의 춤”을 선보이고픈 마음을 다졌다. 그는 비올라의 가능성에 대해 끊임

없이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비올리스트 이한나는 타고난 표현력을 지녔다. 시시각각 곡의 분위기에 맞추어 음색을 변화

시켰다. 특히 음악이 묘사하는 바가 그대로 담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도드라졌다. 그의 비

올라는 마치 카멜레온과 같았다. 때로는 첼로처럼, 때로는 바이올린처럼 변했다. 거친 분위기

가 필요할 때는 다운 보잉(down bowing)과 함께 순간적인 마찰을 끌어냈으며, 가벼운 분위

기가 필요할 때는 활의 압력을 반 이상 덜어 소리를 띄웠다. 명확한 해석의 방향이 있는 듯

표정과 몸짓 또한 음악에 맞춰 변화했다. 자유자재로 활을 다루며 주는 음악적 표현의 변화는

일순간 관객을 압도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한나의 활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격정에 찬 투우사처럼 비올라의 활을 다뤘고, 그 소리는

직선으로 뻗어가 금호아트홀 전체를 채웠다. 가득 힘을 주고 누르며 소리를 냈다면 홀 전체로

뻗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하면 비올라가 낼 수 있는 최상의 음향을 뿜

어내는지 아는 듯 자신 있게 활의 각도와 위치를 바꿨다. 긴장한 듯 첫 곡 <로미오와 줄리엣>

에서 잠깐 활의 흔들림을 겪었지만, 곧 자기 자신의 최상의 각도를 찾았다. 활을 현에서 튕구

고 비비는 등 활의 다방면적인 사용이 필요한 녹스의 곡에서는 활을 쥔 손의 모양을 민첩하게

바꿨다.

이한나의 뛰어난 표현력과 활 조절에 감탄함도 잠시, 몇 가지 습관적인 면모가 관객을 아쉽

게 했다. 첫째는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의 소통이다. 대개 반주가 동반된 기악 연

주에서는 연주자나 반주자가 서로에게 음악을 맞추기 위해 연주가 진행되는 간간이 눈빛을 주

고받는다. 그러나 연주 내내 이한나는 라쉬코프스키를 등진 채 자신의 보면대만 바라봤다. 라

쉬코프스키는 자신이 예측하지 못했던 빠르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이한나를 바라보며 맞춰

나가려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속도 변화에 온 신경을 주시하다 보니 음향 밸런스 역시 무

너졌다. 그들은 점점 각자의 길을 걸으며, 첫 곡과 마지막 곡 모두 평행선의 다른 종착지에서

연주를 마무리했다.

둘째는 이한나의 연주 자세다. 그는 노래가 극적으로 치달을 때마다 항상 두 다리를 벌리고

상체를 뒤로 숙였다. 그러다 음에 강조를 줄 때면 상체를 살짝 더 뒤로 내렸다가, 발을 바닥

에 내리치어 반동을 주며 비올라까지 그 힘이 닿도록 했다. 언뜻 보기엔 내면 어딘가부터 드

라마틱한 변화를 끌어올리는 듯하지만, 실상은 시각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점점 뒤로 향하는 자세로 인해 활과 현이 이루는 각도가 사선으로 흐트

러져 소리에 힘이 빠졌고, 이로 인해 음악은 방향을 잃었다. 또 반동을 줄 때마다 동반되는

발소리는 관객이 온전히 음악을 집중하는데 방해의 요소로 작용했다. 계속해서 보면대를 바라

보며 몸의 측면을 내보이는 자세에, 연습실 창으로 이한나의 연습 현장을 바라보는 듯했다.

셋째는 과도한 비브라토의 사용이다. 이한나는 묵직하거나 애절한 음악에서 주로 비브라토를

사용했다. 사용의 유무에 있어서는 적재적소를 찾아 잘 구분해냈다. 그러나 사용의 범위에 있

어서는 항상 과도했다. 1900년 이후의 곡에서는 종종 오버 비브라토(over vibrato)라는 주법

을 사용한다. 의도적으로 과도한 범위의 비브라토를 사용해 음정의 흔들림을 유발하기 위해서

다. 그러나 이한나의 비브라토는 효과를 위한 기술이 아닌, 습관적인 비브라토였다. 특히 미분

음이 많이 사용된 리게티 곡의 경우, 무분별적이고 과도한 비브라토는 지정된 음정의 범위에

벗어난 음을 도출하는 ‘원작훼손’의 행위가 될 수 있다.


이한나는 활발한 연주활동으로 대세에 오르고 있는 ‘라이징스타’ 중 한 명이다. 그는 공연 전

사전 인터뷰 영상에서 떠오르는 명성에 힘입어 연주커리어를 쌓고 후학을 양성하며 바쁜 나날

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도전이라는 명목 아래 습관적 연주를 도출했다. 나름대

로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는 이유도 있다.

관객이 연주자의 입장을 배려해주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은 사실 없다. 그렇기에,

모든 관객이 연주자의 바쁜 일정을 배려해줄 필요도 없다. 연주자는 연주 현장에 공존하는 관

객의 시간을 풍요로이 채워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연주자가 연주에 투자한 시간을

존중하기 위해 표를 구매하고, 그 노고를 인정하기 위해 연주 후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연주

자를 배려할지 아닐지는 연주자 자신이 아닌 관객의 선택인 것이다. 만일 그가 관객의 배려를

당연시 여겼다면, 필자는 배려해줄 의향이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잠시 간과했을 뿐이라면,

그의 성장가능성을 보아 앞으로 관객에게 더 진심을 다한 연주를 펼칠 수 있길 응원한다.


댓글


법인번호 110321-0049873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바우뫼로 11안길 25. 101호

​문의 : 02-2237-6126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