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피아니스트를 찾아가는 여정
-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2021년 11월 24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30일
2021 임동민, 임동혁 meets 디토 오케스트라
평론가 최지선

최근 개인의 성격 유형을 분류할 수 있는 검사인 MBTI가 유행하고 있다. 선호하는 경향을 구분하고 비슷한 유형을 묶어 성격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주자의 유형도 각자의 뚜렷한 특징을 지표로 삼아 MBTI처럼 분류할 수 있을까? 형제 피아니스트 임동민·임동혁의 각기 뚜렷하게 다른 연주 스타일을 보며, 연주자의 개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척도의 MBTI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비슷한 DNA를 가진 형제 피아니스트여도 음악을 만드는 방법과 스타일이 극명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주할 때 유연하고 풍성한 소리를 위해 몸을 크게 사용하는 연주자 유형이 있다. 움직임이 동적인 유형이니 임의로 Energetic Motion, E유형이라고 칭해 보겠다. E유형의 피아니스트는 손가락 끝으로 쏟아내는 음색을 자유롭게 조절하기 위해 팔꿈치와 어깨의 회전 각도가 넓은 편이다. 임동민 피아니스트는 E유형의 극단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그는 모차르트 (W. A. Mozart, 1756~1791)의 피아노 협주곡 제12번(Piano Concerto No.12 in A Major, K.414)을 연주하는 내내 몸을 크게 움직이며 A장조에 어울리는 생동감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1악장에서 포르테의 아르페지오와 스케일 음형을 연주할 때에는 의자에서 거의 일어나듯이 몸을 들어 올려 상체의 무게를 능동적으로 활용하였다. 수비토 피아니시모(Subito pp)의 정교하고 세밀한 트릴을 위해서는 얼굴과 몸을 웅크려 건반에 최대한 가깝게 붙이고 손가락 끝에 집중했다. 반면에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신중하고 정적인 연주를 보여주는 쪽은 Static Motion, S유형이라고 해 보겠다. 임동혁 피아니스트는 짧은 단위의 동기나 프레이즈(Phrase)에 매순간 집중하기보단, 음악의 긴 흐름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차곡차곡 전개해나가는 연주자다. 이러한 S유형은 음악 안에서 즉흥적인 변화를 지양하므로 몸의 움직임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번(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을 연주하며 그는 튀어 오르는 과장된 움직임 없이 지그시 소리의 시작과 끝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악장의 도약이 많은 구간에서도 손이 건반에서 멀리 위치하지 않도록 최대한 밀착시켰고, 덕분에 섬세하고 여린 음색의 선이 매끄럽게 구현되었다.
이번에는 피아노 협주곡 형식에서 드러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 스타일을 Driving Play의 D유형과 Cooperative Play의 C유형으로 분류해 보겠다. 임동민은 유동적이고 즉흥적인 느낌으로 박자를 휘몰아치며 기교를 뽐내는 카덴차(Cadenza)를 보여주었다. 하나의 시간에 머무르지 않는 본능적인 운동성, 어떻게든 앞으로 진행하고 움직이는 음악을 선호하는 D유형의 연주자인 것이다. 그의 풍부한 템포 아고긱(Tempo Agogic)은 지휘자의 곤란한 포즈와 표정을 초래할 정도였다. 임동민의 살아 날뛰는 박자를 맞추어가기 위해, 디토 오케스트라의 이병욱 지휘자는 아예 몸의 방향을 피아노 쪽으로 틀어 피아니스트를 주시하느라 오케스트라를 등지고 서서 지휘하였다. 이렇듯 D유형의 연주자가 연주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솔리스트가 전체적인 음악을 주도하여 이끌어가게 된다. 반면 C유형은 인내심을 갖고 음악의 구조를 건축적으로 설계하며, 오케스트라와의 균형을 맞추어가기 위해 먼저 앞서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임동혁은 이러한 C유형에 해당한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는 가끔씩 시선을 교환하면서도 서로 합일된 박자와 음량을 유지하였다. 임동혁은 독주 악기가 오케스트라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도 3악장 카덴차에서는 독주자로서의 역량을 자랑했다.
혼자서 비르투오소(Virtuoso)적인 단단한 울림을 뿜어내었는데 앞선 오케스트라와의 협주를 위해 조절했던 제한된 음량에서 비로소 해방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다만 다른 연주자에 비해 꾸밈음의 개수를 줄여서 장식이 과하지 않도록 연주하였다. 이를 통해 모차르트의 본질을 고전주의 사조에 알맞도록 표현하려는 학구적인 해석이 바탕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임동민은 ED(Energetic Motion/Driving Play), 임동혁은 SC(Static Motion/Cooperative Play)유형이라고 임의로 라벨을 붙일 수 있겠다. 마침 두 연주자가 모두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선곡하여서 비교하는 기준을 잡기에 더욱 용이했다. 물론 다른 형식과 조성, 시대의 작품을 연주하는 무대에서는 부분적으로 다른 모습이 보일 수 있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 H. Gould, 1932~198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이가 들어가며 연주 스타일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여타 특징들을 근거로 삼아 또 다른 지표들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연주자들이 오랜 기간 구축하고 체화한 음악 어법은 어떻게든 각자 개성의 근간이 된다. 연주 스타일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음악 취향을 더욱 구체화 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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