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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엘리엇 가디너의 바흐 b단조 미사 & 모차르트 레퀴엠

  • classiccriticism
  • 4월 30일
  • 2분 분량

불완전함 속 해석의 힘

2026년 3월 3~4일 19:3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시대 연주의 대가인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가 자신이 창단한 컨스텔레 이션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처음 내한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들이 연주한 바흐 'b단조 미사'와 모차르트 c단조 미사;, 레퀴엠'으로 이 어진 이틀간의 프로그램은 시대악기 특유의 음색, 텍스트를 또렷하게 세우 는 프레이징, 그리고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연출이 어 우러지면서 종교음악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석의 대비와 긴 장감이 살아 있는 무대로 끌어 올렸다. 이들의 해석은 정돈된 연주보다 무 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연주를 지향했다. 물론 연주 전반에 걸쳐 밸런스 조율과 앙상블 측면에서 불균형을 이뤘던 곳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이들의 연주는 이런 결점을 감수하게 할 만큼 해석의 방향이 선명 했고, 무엇보다 무대의 몰입도가 높았다.

첫날 바흐'b단조 미사'에서 이러한 특징이 더 뚜렷했다. 가디너는 단어 하 나하나에 힘을 실어 음악을 끌고 가다가도 갑자기 다이내믹을 크게 낮춰서 음악의 공기를 완전히 바꾸곤 했다. 반복되는 어구가 많은 곡에 이런 대비 감을 준다면 텍스트의 의미가 다양한 표정을 갖게 된다. 'Credo'에서는 소 리를 한껏 낮춰 피아니시모로 가라앉힌 뒤 다시 크레센도로 강하게 에너지 를 끌어올리면서 음악을 살아있는 드라마로 변모시켰다.

또한 각 음절을 텍스트가 선율 속에 묻히지 않고 전면으로 돌출되도록 강 조하고, 합창에서는 성악의 각 성부와 화음을 정교하게 펼쳐냈다. 예수가 빌라도에게 수난받는 대목에서는 현악기의 무게감 있는 보잉이 돋보였다. 마치 비발디 〈사계> 중 여름' 1악장의 무력한 공기를 연상시키듯 의도적으로 텐션을 늘어뜨린 바이올린 선율을 통해 수난의 고통을 청각적으로 구현 해 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시대악기 연주답게 소리는 투박했지만 예민한 톤 의 변화는 그대로 드러났다. 현악기 활의 각도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도 있었고, 음정이 맞지 않고 날카로운 소리가 지속되기도 했다. 오보에 다 모레와 호른에서도 음정 문제가 자주 발생했고, 류트가 수직적인 앙상블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한 박자 먼저 들어서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성악의 경우 후반으로 갈수록 카운터테너 등 일부 솔로 라인에서 다소 버 거워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거친 질감이 연주의 몰입을 깨기 보다는 오히려 실황 특유의 생기를 더했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바흐가 아 니라, 순간순간 숨 쉬고 움직이는 바흐였기 때문이다.

무대 배치도 두드러졌다. 'Osanna'에서 합창단을 좌우로 나눠 배치한 장면이나, 연주 도중 기억 단원들의 위치를 직접 조정하는 모습에서는 가디너 의 디테일한 면모가 확연히 느껴졌다.



둘째 날 모차르트의 C단조 미사와 '레퀴엠'을 미완성"이라는 공통점으 로 묶은 프로그램 역시 연주 방식에 있어서 바흐와 결이 비슷했다. 질감의 대비와 다이내믹의 낙차를 크게 가져가면서 음악을 앞으로 밀어붙였고 프 레이징은 크게 열었다가 급격히 접고, 다시 끌며 올리는 식으로 움직였다.

성부 배치는 시대악기의 소리와 겹치며 입체적인 효과를 만들었다. 레퀴엠 에서는 비장함에 깊게 잠기기보다는, 의식이 실제로 발을 내디디며 전진하 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Dies irae'는 빠른 템포로 완급조절을 함께 이끌며 무작정 몰아치지는 않았고, 'Sanctus'의 상행하는 음형은 성악과 현악 모두 에서 비교적 힘 있게 살아났다. 'Hosanna에서는 템포를 미세하게 조정하 며 리듬의 탄력을 만들어냈다.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날에 이어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의 앙상블이 맞지 않아 정리되지 않았고 소프라노 레네케 루이텐은 전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지만, 테너 가레스 트레세더는 상대적으로 음량 이낮아지는 순간이 있었다.


이번 내한 공연은 앙상블과 밸런스의 측면에서 적지 않은 한계를 드러냈 다. 그럼에도 가디너는 바흐에서는 텍스트와 강약의 대비를, 모차르트에서 는 질감과 구조적 추진력을 통해 해석의 무대로 연출했다. 결국 이틀간의 무대가 관객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완성도 그 자체가 아니라, 불완전 함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 있던 해석의 힘이었다.




글 이강원(클래식음악평론가)



※ 이 글은 ≪음악저널≫ 2026년 4월호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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