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잔향 속에서 청중을 사로잡다
-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2021년 11월 10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11월 24일
생상스 서거 100주기 기념 - 브누아 프로망제
평론가 이예지

"감사합니다." 지휘자 브누아 프로망제(Benoit Fromange)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한국어로 인
사했다. 단원들은 재치 있게 인사하는 지휘자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청중들은 서
로 미소 짓는 솔로 주자와 지휘자의 교감에서도, 솔로 주자를 위해 더 큰 박수를 유도하는 지
휘자의 모습에서도 즐거움을 느꼈다. 같은 연주를 감상한 사람이라면 그를 '유쾌한 지휘자'라
고 칭하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이렇듯 브누아 프로망제는 청중과 연주자 모두와 교감을 나누
며 무대를 즐겁게 이끌었다.
연주회의 막을 올리는 곡으로 작곡가 채경화의 관현악을 위한 서곡<Ppuri(뿌리)>가 연주되었
다. 모티브 선율이 다양한 악기를 넘나들며 작품 전체를 통해 이어지는 특징을 가졌다. 주제
를 반복하는 생상스(Cameille Saint-Saens, 1835~1921)의 음악적 특징인 주기적 구조
(Periodic Sturcture)와 닮아있어 선곡의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연주 시작 전 손을 들어 올
림과 동시에 악기를 준비하는 단원들의 모습에 요구를 명확히 전달했을 지휘자의 모습이 보였
다. 단원들은 익숙하지 않은 현대 작곡가의 음악에 브누아 프로망제를 자주 쳐다보며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었다. 이에 지휘자는 정확한 박자 젓기로 연주자가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했
다. 음악의 마지막 순간 그는 긴 여운을 즐기며 자신의 생각하는 끝의 순간까지 연주자와 청
중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랐다. 고집스럽게 끌고 가는 여운에 단원들도 함께하는 모
습을 보며 브누아 프로망제의 소통 능력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3번(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No.3 Op.61)
이 연주된다.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은 왼손보다 활을 움직이는 오른손에 더 정성을 쏟고 있
는 모습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힘과 무게는 팔꿈치 부근에 두고 손과 손목은 가볍게 움직였
다. 팔 전체를 사용하면서 미리 예비되는 활의 방향, 무게, 각도는 송지원의 맑은 음색을 예측
할 수 있게 했다. 더불어 자신의 바이올린 소리만 듣지 않고 오케스트라의 소리도 함께 들으
며 연주했다. 몸이 종종 오케스트라 쪽으로 향하며 함께 호흡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2
악장의 서정적인 선율은 음을 한층 더 풍부하게 하는 적절한 비브라토로 감정을 더했다. 악장
을 끝내는 하모닉스 주법도 활에 주어지는 힘을 최소화하며 투명하고 맑은 소리로 연주했다.
다만 3악장의 바이올린 첫 프레이즈가 끝나는 시점에는 음이 이탈하는 실수가 있었다. 당황한
듯 활에 힘이 들어가고 음정이 위태한 모습을 보였지만 점차 침착함을 찾으며 다시 안정된 연
주를 들려주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를 계속해서 쳐다보던 앞의 곡과 사뭇 다른 모
습을 보였다. 이에 프로망제는 꼭 자신을 보아야 하는 지점을 지시하며 해결책을 찾았을 것이
다. 악보만 보는 모습 속에서도 한순간 지휘자에게 집중되는 시선에서 알 수 있다. 지휘자는
울림이 적은 홀의 특징을 인지하지는 못한듯했다. 잔향이 적어 첼로와 베이스의 존재감이 미
비했음에도 불구하고 3악장의 피치카토 연주 도중 소리를 더 줄이라고 지시하여 존재감을 더
지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생상스 교향곡 3번(Symphonie No.3 Op.78)은 내용적으로 4악장으로 구
분된다. 주기적 구조의 특징을 가져 반복되는 순환 주제가 중요한 곡이다. 1,2악장에서 어긋
나는듯했던 현악기는 3악장부터 안정감을 찾았다. 존재감이 적어진 첼로와 베이스로 인해 약
해진 화성감과 무게감을 오르가니스트 신동일의 오르간으로 채워나갔다. 오르간은 모든 악기
를 감싸주듯 끊김 없이 부드럽게 연주되었다. 반면 생상스는 2악장 C 부분에 관악기를 증화
음으로 등장시키며 '불안의 넋이 나간 불확실한 느낌을 가져오는 듯(bringing back a vague
felling of unrest)'이라고 지시했다. 자필 분석에 명시되어 있는 이 부분은 타이밍의 어긋남
으로 작곡자의 의도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빠르게 진행되는 프레스토(Presto)에서 트
럼본과 튜바로 연주되는 순환 주제는 느려지는듯한 인식을 전했다. 호흡을 불어넣는 순간과
공기가 관을 통과하여 실음이 진동하는 순간 사이의 시간을 인지했는가? 의문이 남는다. 곡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코다는 융합되지 못한 악기들의 소리로 웅장함이 아닌 무게감만 전달
했다.
융합되지 못하며 아쉬웠던 음향은 단지 악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은
잔향이 매우 적어 청자에게 풍부한 배음이 아닌 직접음만 닿는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마치
무대 앞에 투명한 막이 있는 듯 소리가 무대 안으로 먹혀들어가는 느낌이다. 음향의 적절한
반사를 위한 장치를 설치한다면 더 나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브누아 프로망제는
연주자 뿐만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홀의 아쉬움을 잊게 하는 재치
와 진중한 음악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연주를 되새겨 볼 때도 '유쾌한 지휘자'
덕분에 이 무대가 특히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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